[현장에서] "뭘 해?" … 할머니들도 모르는 위안부 협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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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엽
정치국제부문 기자

이옥선(87) 할머니의 오른쪽 손등과 발등엔 칼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1942년 7월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 옌볜(延邊)위안소에서 도망치다 헌병에 붙잡혀 생긴 상처다. “도망을 못 가게 하려고 발을 자르려고 했어.” 이 할머니는 “17살 소녀 시절이 몸서리치게 괴로웠다”고 말했다.

 15일 경기도 광주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후원시설 ‘나눔의 집’. 위안부 문제만 의제로 다루는 최초의 한·일 위안부 국장급 협의가 16일 열리지만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한 할머니는 “내일 뭘 한다고? 내일은 수요집회 있는 날 아냐?”라고 물었다.

 “할머니들이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도출하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외교부는 협의를 앞두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접촉조차 하지 않았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일본과 협의를 하려면 정부가 최소한 살아계신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라도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전화조차 없다”고 했다.

국내 네 번째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15일 성남시청 광장에서 열렸다. 피해자 김복동(88·왼쪽) 할머니는 “일본이 잘못을 뉘우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외교부의 태도는 일본과도 비교된다. 일본은 국장급 협의 전에 두 차례 피해 할머니들과 접촉했다. 지난 2월 7일 주한 일본대사관 참사관 등 3명이 서울 시내 호텔에서 ‘나눔의 집’ 관계자를 만났다. 지난달 17일에도 야마모토 야스시(山本恭司)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과장이 안 소장을 찾았다. 안 소장은 “일본은 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문제가 끝났고 이미 사죄를 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최소한 목소리를 듣는 시도는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에 만들어진 ‘한·일 청구권협정 TF’도 사실상 가동을 멈춘 상태다. 지난 2월 말 담당 대사가 퇴직하면서 ‘한직(閑職)’이라는 이유로 후임 인선이 미뤄지고 있다. 지난 2년간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외교서한을 두 차례 보낸 게 TF가 한 일의 전부다.

 일본은 이번 위안부 협의를 자국 순방을 앞둔 미국 오바마 대통령 앞에서 면을 세우는 용도 정도로 활용하려 할 게 뻔한데 이런 식이면 외교부는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높다. 직접 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희망은 한 가지였다. 이 할머니는 “일본은 할머니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가 사라지더라도 후손들을 위해선 명예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돈으로 내 17살을 배상해 줄 수 있겠느냐”면서다. 이 할머니는 “평생 바닥만 보면서 고개를 숙이고 살아왔다”며 “지금이라도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면 90살 다 된 우리가 왜 용서를 못하겠느냐”고 덧붙였다.

 나눔의 집 앞에 건립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앞에는 2012년 3월 1일 묻은 타임캡슐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해결되는 날 개봉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외교부가 이 타임캡슐을 열려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협의에 임해야 한다. 남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55분뿐이다.

글=정원엽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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