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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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에선 무엇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공식으로 확인된 것은 물론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요즘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몇가지 맥락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는 것 같다. 우선 9·9절은 그들의 최대 경축일가운데 하나인데, 그 공식행사가 전부 취소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북한주재의 외국인들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말하자면 겹겹이 포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공산정권의 일반적인 속성은 권력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 이런 장막을 친다. 중공에서도 문화혁명(65∼69년) 전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천안문광장에서의 공식행사들이 번번이 취소되었다. 권부의 요인들도 일체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외신들은 그 무렵 한달이 멀게 모택동의 사망설까지 보도했었다.
권부의 내막은 그 정도로 어둡고 침울했다. 기어이 유소기 등은 권력에서 제거되고 문화혁명의 소리가 천하를 진동시켰다. 이를테면 당풍을 바꾸어 놓는 과정이었다.
문혁 후, 임표를 제거할 때도 그랬다. 중공의 수뇌들은 천안문에 좀체로 얼굴을 내놓지 않았다. 북경주재의 외교관들과도 모든 접촉을 단절했었다. 정작 임표가 죽고 나서도 반년동안 한마디의 공식발표도 없었다. 다만 북경의 외교가에 그런 소식을, 그것도 얼마 후에야 흘려보냈을 뿐이다. 새로운 권력구조가 안정될 때까지 그 구조의 변화는 끝내 장막에 묻어둔다.
필경 북한에서도 이런 징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동안 북한에는 이른바 3대 혁명그룹이라는 비공식 권력기구가 있었다. 김일성의 전처소생인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신진들이 관료화 방지·기술혁명·사상혁명을 외치며 각계에 침투, 실력을 행사해왔다. 그 슬로건으로 보아 노쇠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 같다. 필연적으로 여기에는 마찰과 충돌이 예상된다.
문제는 그들 신진그룹은 이제까지 당외 조직으로, 다만 김일성의 배경만 가지고 행세를 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각계에서 뿌리를 굳혀가며 언젠가 당내 조직으로 파고 들어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문점사건은 하나의 촉발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나름의 평가에 따라 이것은 노소의 대결을 유발했을 것이다. 그동안 땅속에서 은밀히 부글거리던 화산이 기어이 판문점이라는 분화구에서 폭발한 셈이다.
이와같은 북한의 내부적인 불안은 의외로 바깥으로 불꽃을 튕길지 모른다. 우리는 그 점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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