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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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프랑스의 발레리·지스카르-데스텡 대통령은 어제까지의 동맹자이던 드골파의 쉬라크 수상을 사임시키고, 후임에 현 재무상 바르씨를 임명했다. 74년 대통령선거에서 좌익연합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간의 제휴가 집권 2년만에 끝난 셈이다.
독립공화파를 리드하는 지스카르-데스텡의 정치노선과 쉬라크로 대표되는 드골파의 입장은 본래부터 공통점보다는 상치가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양자가 정권의 공동관리체제를 출범시킨 직후부터 지스카르의 중도개혁 구상과 드골파의 보수주의는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스카르가 미국·나토·EEC·서독과의 긴밀한 유대를 중요시하는 대서양주의자라면, 쉬라크에 의해 대표되는 드골파는 그 반대쪽을 지향하는 국수주의자다.
지스카르가 인공중절과 이혼에 대해 「위」(ouis)하고 긍정의 청신호를 보내면, 드골파는 「농」(non)하고 맹렬히 반발했다. 뿐만 아니라 진취적인 지스카르는 드골의 반 나토적인 전 방위전략을 내동댕이치고, 다시 나토에의 접근과 대소경계를 주축으로 하는 국방정책을 채택한 사람이다.
내정에 있어서도 지스카르의 의욕적인 세법개정은 드골파의 불만을 사기에 족한 것이었다.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새로운 세법은 대부동산 소유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드골파의 반발을 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드골파와의 대립을 각오하고서라도 지스카르로서는 계속 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지스카르로서는 그 정도로나마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서는 78년의 총선거와 81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좌파의 도전을 이겨내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74년에 이미 49·2%의 득표률을 보인 좌파연합은 금년 3월의 지방의회 의석의 반수개선에서는 53%라는 급강세로 진출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78년과 81년에는 제2의 이탈리아 선풍이 프랑스에 몰아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프랑스의 경우 공산당은 고작 20%정도의 미약한 득표률 밖엔 얻지 못한 점이 다르다고 할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프랑스 유권자들이 좌파의 미테랑 후보에 49·2%의 표를 안겨준 것은 공산당이 예뻐서가 아니라 20년 동안이나 프랑스를 이끌어온 드골주의의 유산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라 할수 있다.
그 밖의 또 한가지 이유로서는, 드골식의 『공산당이냐, 드골이냐』라는 가파른 양자택일 요구가 오늘날에 와서는 프랑스 정계를 양극화시키고 중도세력을 몰락시켰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프랑스 국민들은 고루한 드골주의나 믿을 수 없는 공산당보다는 중도적인 개량주의와 진취적인 행정개혁을 열망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러한 판단 때문에 지스카르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 역할을 해주던 드골파에게 단호한 절교장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전적 탈 드골선언은 정치적으로는 하나의 커다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드골파의 협조 없이는 차기선거에서의 우파연합의 승산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자신의 이른바 중도적 신 다수파를 새로이 형성할 가능성도 그리 크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스카르 대통령은 행정적으로는 친정체제를 강화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그 힘이 약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파행성을 가지고 과연 차기선거에서 좌파연합을 무난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유서 깊은 프랑스 공화정의 건재를 위해, 그리고 달갑지 않은 이탈리아 선거 풍의 재판을 방지하기 위해, 드골주의자들이 대국적인 안목에서 지스카르적 개량주의를 좌익에 대한 최선의 방파제로 인정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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