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미술 지 왜 없나|새 미술잡지를 기대한다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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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참석자>
임영방 (서울대 미대교수·미술평론)
이 일 (홍익대 교수·미술평론)
이귀열 (한국근대 미술연구소장) <무순>
우리나라의 미술계는 여느 때 없이 활기에 넘쳐 있다. 미술인구의 증가는 물론, 미술작품의 질적인 향상은 우리미술계를 한결 돋보이게 한다. 이와 함께 전시회마다 애호가들로 성황을 이루는 것도 인상적인 현장이다. 그러나 우리화단에 아직 본격적인 미술잡지가 없는 것은 하나의 이상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 미술평론가들이 모여 우리나라 화단의 실태와 바람직한 방향 등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임=2천명이 넘는 미술인구, 대학에서의 미술교육열 그리고 최근의 미술애호「붐」을 보더라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미술잡지하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것은 정말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이 선생은 전에『미술』이라는 잡지를 직접 만드셨지만 우리나라의 미술잡지는 거의가 1∼2호를 넘기지 못했지요?

<본격 미술 지 하나도 없어>
이귀=네, 기업적인 바탕이 없었다는 게 중요한 이유였죠.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저널리즘」이라면 1921년에 나온『서화협회 보』가 될 것 같습니다. 본래 회고협회의 기관지였지만 일반을 계몽하기 위해 신 미술을 소개하는 글을 싣곤 했으니까요. 고희동 선생이 기획·편집했던 이 책은 1년에 한번씩 2번을 내고 중단됐습니다.
해방 후 새로운 의욕으로『미술』『조형예술』이 창간됐지만 역시 1·2호를 넘기지 못하고 좌·우익충돌 속에서 폐간돼 버렸지요.
56년에 와서 판화가 이항성씨가『신 미술』을 시작했습니다. 월간이었는데 12호까지 나왔습니다. 때로 거르고 합본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2∼3년은 버틴 셈입니다. 이항성씨는 당시 미술교과서를 출판하고 있던 때라 교과서 판매조직망을 통해서『신 미술』은 잡지로서 꽤 궤도에 올랐었지요.

<창간돼도 고작 1, 2호>
이일=그리고 64년에 이귀열 씨가 편집을 맡아『미술』을 창간했죠? 이때도 이항성씨가 제작을 맡았으니까 이씨는 미술출판에 상당한 공로자인 셈입니다.『미술』도 단 1호를 내고 이씨의 출판사업 도산으로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

<재정 빈약·성격 모호>
임=미술잡지가 성공 못한 것은 재정기반이 없었다는 게 첫째 이유지만 잡지로서의 뚜렷한 성격이 없었다는 데도 책임이 있을 것 같아요.「뉴스」에 충실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본격적인 평론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성격 얘길 하자니 생각납니다만, 순수한 미술잡지는 아니지만 월간『공간』이 10년을 계속해 왔군요. 편집인 김수근씨의 집념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아요. 건축과 예술전반 그리고 전통문화와 첨단적 현대예술까지를 한꺼번에 다뤄 좀 혼란스럽긴 합니다만.
이일=상업화랑의 기관지이긴 하지만 계간『화랑』이 벌써 3년째 미술애호인 들에게 정보제공자 역할을 해 왔죠. 이 선생은 미술잡지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재정빈곤 외에 또 어떻게 보십니까?

<미술계에 이론배경 없는 탓>
이귀=미술잡지뿐 아니라 우리나라엔 최근까지 미술에 관한 책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술분야가 대개 비슷하지만 이론적인 배경이 부족한 거죠. 평상시에 논리를 따진다 든 가 정보를 분석하는 경험이나 훈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이 출판되지도 읽히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독지가가 투자해야>
임=또 미술잡지엔 원색도 판 등 다른 분야보다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듭니다. 「프랑스」나 미국에서도 미술잡지가 돈을 번다는 얘긴 듣지 못했어요. 결국 돈 있는 독지가가 예술과 애호인 들을 위해 긴 안목으로 투자를 하는 길 밖에 없지요. 요즘「매스컴」이나 기업체에서「스포츠」를 기르듯이 말입니다.

<대중 위한 잡지가 필요>
이귀=요즘은 미술출판도 활발하고 애호 인이 늘어 미술잡지가 성공할 여건이 무르익은 느낌입니다.
순수미술은 그 본질상 유일 작품을 제작하고 수장 가가 그것을 비싼 값으로 사 버리면 거래는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대부분의 예술애호 인이나 학생들은 미술로부터 완전히 소외되는 거지요.
사진으로라도 좋은 작품을 보내 주고 정보와 경향을 소개하고 이론적인 분석을 해서 이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 미술잡지가 해야 할 일이죠. 대중을 위한「저널리즘」이 필요한 것입니다.

<전문지엔 전문기자를>
이일=이번 가을에 중앙「매스컴」에서도 본격적인 미술 지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기대가 큽니다만, 바라고 싶은 것도 많아요. 가령 전문지를 만드는데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깊이 있는 편집계획, 빠르고 믿을 만한 정보수집망, 전문적인 자질을 갖춘 기자 등등.
임=미술잡지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원색도 판입니다. 요즘 미술책자나「팸플릿」을 보면 원 화와 너무 동떨어진 색조에 놀라움을 넘어 불쾌할 정도예요.
특히 외국의 미술품사진을 취급할 땐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만큼 믿을 만한 사진을 입수해서 정확히 분해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기록 지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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