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경비』만으론 안전보장 미흡|미 브루킹즈 연구소 클라프씨, 본지 김영희 특파원과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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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미 양국이 이번 판문점사건을 처리한 방법은 북괴에 대해 효과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북괴가 그 이전까지 보여준 근본적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미 브루킹즈 연구소 선임연구관 랠프·클라프씨는 말했다. 클라프씨는 중앙일보와의 단독회견에서 또 북괴 측이 25일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제의한 분할경비 안에 대해 일단 고려할 가치는 있지만 줄 하나를 갖고 사고가 방지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클라프 씨는 외교관 출신으로 중공·홍콩·대만에서 13년을 근무했고 국무성 중국문제연구소장도 역임했다. 중국과 한국문제 전문가인 그는『동아시아와 미국안보』,『미국, 중국과 군비통제』에 이어 최근에는『한국에 있어서의 전쟁억제와 국방』이라는 저서를 내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다음은 회견요지.
김=국무성이 김일성의 회답을 일단 거부했다가 수락으로 번복한 데에는 심각한 곡절이 있다고 보는가?
클라프=『정부내부에 손발이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큰 정책의 변화로는 안 본다. 여기서 말하는 손발이 안 맞았다는 이야기는 백악관과 국무성간의 의견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국무성 안에서도 상하간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됐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김일성 회답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가 긴장이 완화되기를 바라고, 그리고 사건을 그 이상 악화시키기를 원치 않았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김일성이 급속히 그와 같은 회답을 보내게 한 데는 중공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는가?
『이렇다 할 증거는 없다. 그러나 중공과 소련이 한국에서 새로운 분쟁을 원치 않는다는 증거는 분명히 있다. 중공과 소련이 실제로 김일성에게 온건한 처신을 종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중공과 소련이 다같이 바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 이 사건은 마무리가 된 것인가?
『그럴 것이다. 정전 위 회의가 다시 소집되겠지만 사태를 수습하는 방향일 것이다.』
-미국 신문들은 김일성이 직접 메시지를 유엔 군사령관에게 보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혹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문제의 교착상태가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은 있는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북괴가 취한 태도, 비동맹회의에서의 움직임, 그리고 유엔 결의안 같은 것을 보면 북괴의 입장이 그렇게 간단히 바뀔 것 같지가 않다. 그들은 한결같이 미군 철수를 주장한다.
-북괴는 그들의 입장이 국제사회에서 점차 성과를 보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고 보는가?
『김일성은 그렇게 생각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비동맹회의만을 제외하고는 사태가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판문점사건으로 미국 내의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거론해 온 인사들의 입에 재갈이 물려진 것 같은가?
『일시적으로는 그렇게 될지 모른다. 미 행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미군 철수를 주장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은 판문점사건을 예로 들면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다시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공동경비구역 안에 다시 남-북 경계선을 치자는 북괴제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완충지대는 아니고 줄을 하나 긋는 것이다.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줄 하나만을 가지고 사고가 방지될 수는 없다. 그런 줄이 생기면 이번에는 그 줄을 넘었다 거니 안 넘었다 거니 하는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은 휴전이후 지금까지 남북이 한데 어울린 유일한 대화의 장소였는데 거기다가 다시 줄을 치 면 혹시 남-북 관계가 그만큼 후퇴한다는 의미가 되는가?
『거기서 양측이 한데 어울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해서 상호이해의 진전을 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효과로 말하자면 그 반대가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것을「분할 속의 분할」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대한정책을 재검토하라는 여론이 일고 있는데.
『우선 선거가 급하다. 지금부터 내년1월까지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민주당의 카터가 당선되면 다소의 변화가 예상된다. 포드가 재선돼도 대한정책을 일단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포드의 경우에는 큰 변화는 있을 것 같지 않다.
-여러 각도에서 이미 논의된 일이지만 북괴가 판문점사건을 일으킨 동기는?
『역시 비동맹회의를 노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유엔을 생각할 수 있다. 그밖에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다.』
-북괴의 국내사정 때문이란 견해는?
『그런 것 같지 않다. 그게 사실이라면 북괴가 그렇게 빨리 후퇴하겠는가?』
-키신저의 이번 사건처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약간의 실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좋았다. 즉각적인 힘의 시위는 북괴에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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