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풍요|울주의 암각화 |진홍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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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남 언양에서 멀지 않은 태화강 상류에 「댐」 공사로 호수가 생겼고 반귀대라고 불리는 일대에는 큰 암벽이 물 속에 잠겨 있었다.
이 암벽에 조각이 있다는 사실에는 일찌기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었고 더우기 물 속에 잠겨 버린 뒤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1972년 겨울 심한 갈수로 말미암아 수위가 10여m 떨어져 암벽에 조각한 그림이 나타났고 그 내용이 비로소 주목을 끌게 되었으나 그후 수위의 상승으로 이들 그림은 다시 물 속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이들 그림은 암벽의 일부 매끈매끈한 곳에 돌연장으로 쪼아낸 것인데 솜씨는 정교하지 못하나 여러 가지 중요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표현 수법이 솔직 대담하고 그 속에는 그들의 염원과 신앙이 담겨 있어 이를 조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 그려진 그림 가운데는 사람도 있지만 짐승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중에는 무슨 짐승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으나 고래·거북같이 물에서 사는 짐승과 개·늑대·호랑이·멧돼지·염소 같은 뭍에서 사는 짐승들이 있다. 왼쪽 위에 서있는 사람은 성기를 노출시키고 있어 고대 토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으나 이 경우에는 오히려 다산과 번식을 염원하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러한 추측은 그 옆에 있는 큰고래 머리 부분에 작은 또 하나의 고래를 그리고 있음은 뱃속에 새끼를 배고 있음을 뜻한다고 보여지며 여러 마리 염소 중에는 유난히 배가 부른 것이 있어 이것도 새끼를 배고 있는 모양이라고 추측되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이 암각화 중에는 목책과 그물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그물은 U자형으로 나타내고 그 안에 짐승이 있는 점으로 보아 짐승을 잡는 모습으로 생각된다.
서양에 있는 고대 동굴 벽화에서 그들의 생활과 염원을 볼 수 있는 것과 갈이 이 암각화에서도 이 부근에서 생활하던 고대인들이 산에서 짐승을 잡고 뭍에서 고기를 낚던 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남성의 성기와 동물의 잉태한 모양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그들 종족의 번식을 염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반귀대에서 다시 상류로 올라간 멀지 않은 곳 천전리에도 암각화가 있어 서로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여지나 이보다는 다양하지 못하다. 천전리 암각에는 화랑의 철문이 많이 있어 이 일대는 고대부터 하나의 성지로 여겨져 왔음이 삼국유사의 기록과 함께 짐작되고도 있다. 이 암각화의 연대는 청동기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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