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래은행제도 기업의 자율성을 해친다"|업계서 효과에 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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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금난에 맞닥뜨리고있는 기업의 경영 애로점에다 금융에 의한 민간기업구속조치가 주거래은행제로 나타나고있어 업계를 괴롭히고 있다. 관련업계에 의하면 5·29조처에 의해 기업「그룹」의 여신관리를 해온 정부가 또다시 주거래은행제를 실시하여 개별기업의 자금계획을 좌우하려는 것은 기업의 자율성을 해치는 처사라고 비난하고 있다.
주거래은행제는 차주기업에 대해 은행에서 종합여신관리를 함으로써 금융자금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의 건전 경영을 유도한다는데 목적을 두고있다.
주거래은행제로 인해 모든 기업은 1개의 주거래은행과 2개의 부거래 은행을 통해서만 금융 거래를 해야하고 주거래은행에서 기업의 운전자금한도를 정하기 때문에 기업의 숨통을 은행이 쥐는 셈이 된다.
즉 은행이 모든 기업경영을 지도하는 입장에 서게되는데 국내은행과 같이 경직되고 관료화한 경영체계로 신속과 결단을 생명으로 하는 민간기업경영을 지도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있다. 우선 은행 스스로가 상업「베이스」에 의해 자율적인 건전 경영을 못하고 있으면서 기업의 건전 경영을 유도한다는 것이 의문시된다는 것이다.
각 업계의 의견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작년 감사원의 전면적인 은행감사결과 은행이 엄청난 부실경영을 하고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부실경영을 하는 은행이 민간기업의 건전 경영을 지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은행의 경직되고 비효율적인 부실요소가 민간기업에 오염될 우려가 있다. ②주거래 은행 제도에 있어선 기업이 자의적으로 단골 은행을 옮길 수도 없고 또 기업「그룹」은 원칙적으로 같은 은행과 거래하게 되어있다.
이미 기업별로 주거래은행이 지정되어 이것이 은행의 기득권처럼 되었다. 은행끼리 거래기업의 나눠먹기를 끝냄 것이다. 정부는 민간기업에 대해 경쟁에 의한 능률의 제고를 강조하면서 정부관장아래 있는 은행은 스스로 독과점의 강화에 앞장서도록 허용한 것이다.
기업 측으로선 은행의「서비스」나 능률이 아무리 나빠도 이를 감수 할 수밖에 없다. 은행은 그나마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경쟁도 필요 없게 되었다. 기득권만 즐기면 되게 되어있다. 이것은 결국 은행의 독과점「카르텔」에 의한 금융시장의 분할을 정부스스로가 장려하는 셈이다.
기업「그룹」은 원칙적으로 같은 은행과 거래토록 한 것은 일본과 같이 은행과「그룹」간의 계열화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하고있다.
그러나 일본은 금융자본이 기업에 진출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계열화가 이룩된 것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한국에 그대로 적용시키겠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요즘 은행은 대우 저하 등으로 인원이 많이 기업으로 빠지고 있다.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은행이 기업을 객관적으로도 합리적으로 지도할 수 있을지가 의문스럽다.
은행이 기업경영을 강제나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감을 갖게 지도하려면 은행경영이 민간기업보다 더 능률적이고 앞선다는 공인을 받아야한다. 현 단계에선 오히려 은행이 기업의 능률·적극성·경쟁성 등을 도입하여 스스로의 부실경영을 과감히 쇄신해야할 필요가 있다.
③우리 나라 기업들도 이미 경영면에서 자체추진력이 생겼으므로 기업을 국민경제에 소망스러운 방향으로 유도하려면 경영면에서 일일이 손을 잡고 이끌 것이 아니라 세제·금리·환율·가격정책 등을 통해 방향만 제시하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유경제 체제의 원리이며 또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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