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톰슨」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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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의 언론을 주름잡던 신문왕「로이· H· 톰슨」경이 4일「런던」에서 숨졌다. 향년82세.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밖에 나오지 못한 그였지만, 일화로 가득찬 일생을 보냈다.
그가 25세때 처음으로 방송국을 개설했을 때는 빈털터리였다. 그는 송신기를 5백「달러」의 약속어음으로 샀다. 「아나운서」도 한 명밖에 두지 않았다. 또 방송실이 없어 어느 영화관광고를 무료로 해주는 대가로 무대 뒤의 빈터를 얻었다.
이렇게 고생한 탓인지 그는 매우 검약했다. 억만장자가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그는 싸구려 외투를 백화점의 염가대매출에서 18「파운드」이상이나 싸게 샀다고 자기아들에게 자랑했다.
『반시간 안에 18「파운드」나 되는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그는 비행기를 탈 때에도 꼭 2등표를 샀다. 1등을 탄다는 것은 큰 낭비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인색한 것은 아니었다. 몇 해전에 그는 5백만「파운드」를 희사했다. 개발도상국의 기자훈련을 위한 재단설립기금에 쓰라는 것이었다.
「더·타임스」지를 인수한 것도 돈벌기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가 인수했던 67년에 동지는 1백50만「파운드」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물론 그는 동지를 5년 이내에 흑자로 바꿀 자신은 있었다. 그 비결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신문을 더 좋게 만들면 싫어도 독자들은 사보기 마련이라는 것.
그가 이끌던 신문왕국은 세계12개국에 걸쳐 있으며 신문2백여개, 잡지 1백38개, 방송국15개 등이 속해있다.
이 모든 경영진이나 편집진에게 그는 별달리 지시하는 일이 없었다.『나는 두가지 지시만을 한다. 하나는 진실을 알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역사회의 사람들을 대변하라는 것이다. 나는 재정의 뒷받침만을 하겠다.』
이런 방침아래 그는 마치 술에 취한「마도로스」처럼 돈을 뿌렸다. 그 결과「더·타임스」도 인수한지 3년만에 수지를 맞추게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매우 좋아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그를 좋아했다. 소탈하고, 순박하고, 솔직한 그의 인품에 매혹되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성공의 비결이 있었다.『내 이름은「톰슨」입니다. 「로이」라고 불러주시오. 』 이렇게 그는 누구에게나 다정스레 인사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의「헨리· 포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로 양자사이에는 유사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존 때문이었을까. 수줍음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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