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빙·볼」과 「띄운 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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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국어 순화운동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의 극단주의 때문에 적지 않은 물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일본잔재인 일어식 표현의 발호와 영어의 남용 때문에 빚어진 우리말·우리 글의 혼란과 품위저하를 막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통해 민족주체의식을 제고하자는 것이 바로 이 운동의 근본 취지임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극단론자들은 그 운동의 과정에서 국어순화운동의 본질까지도 망각한 억지춘향식 고집을 부림으로써 낯뜨거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국어의 순수성 문제를 너무 편협하게 고집하는 나머지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까지 다른 말로 조어한다든가 한자어를 억지로 고유어로 바꾸어 쓰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도 지적하였듯이 『이미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체육용어 등 전문용어나 수출상품명까지도 우리말로 고치는』 등 평지풍파의 혼란을 일으키는 우를 저지르는 사태조차 없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히 외래어의 침투로 말미암은 국어오염을 막는 것은 중요한 국가적 과업임에 틀림이 없지만, 언어와 문화의 본질을 무시한 시대 착오적 편협성은 국어순화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그 혼란만을 조장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균형감각을 잃은 국어 순화운동이 항상 실패하였다는 역사의 교훈은 「나치」독일과 「뭇솔리니」의 「이탈리아」에서 추진됐던 외국어 일?운동의 실례를 통해 볼 수 있다.
이미 상당히 보편화된 언어생활습관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하루아침에 외래어를 몰아 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극히 불합리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근자 한국방송윤리위가 자발적으로 심의해서 만들어낸 「스포츠」용어들은 충분한 논의의 대상이 됨직하다. 그것들은 대체로 무리를 피하면서도 일상적인「스포츠」용어의 국어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그 노력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개중에는 아직도 일반인의 귀에는 전혀 생소한 조어를 적지 않게 창출해 냈다는 평가도 벗어나기 힘든다. 언어는 하나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 새로운 용어가 차차 익숙해지리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가졌음직도 하나, 아무래도 의미가 모호하거나 유래 및 전문성을 일탈한 용어 예를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즉 축구의 「로빙·볼」을 「띄운 공」이라 한 것은「하이·볼」과 구별이 어렵고, 「스위퍼」를 「최후수비수」라 할 때, 「골·키퍼」(문지기)와의 혼동이 생기며, 「볼·컨트롤」과 「트래핑」을 구별 않고 모두 「공 다루기」로 한 것 등은 누가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가.
또 야구의 경우엔 그 용어들이 거의 이 경기에만 특유한 숨겨진 뜻을 갖고 있는데, 「클린업·트리오」를 「중심타선」, 「더블·스틸」을 「두 자리 뺏기」,「사우드·포」를 「왼손투수」, 「스퀴즈」를 「짜내기」로 해서 과연 제 맛이 날지 의문이다.
더우기 이 같은 운동경기 용어를 새로 제정함에 있어 전문 국어학자들의 참여도 없이 한달만에 전격적으로 완결 지은 것도 신중성을 결한 처사가 아닌가 한다.
고립된 사회에선 살기가 어려운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말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 외래어의 단순한 배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이치다.
우리말의 내용을 더욱 풍요하고 아름답게 다듬기 위해서도 외래어의 폭 넓은 수용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 만큼 국어순화를 구호로 외치는 식의 운동보다는 국어사랑의 주체적 정신을 키우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며, 국수주의적인 과격론이나 획일주의 등은 가장 경계해야할 태도라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건전한 국어생활을 위해 좀 더 장기적이고 끈질긴 학문적 연구 토대를 구축하는 노력을 촉구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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