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의 거래 관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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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 공고 된지 이제 3개월이 지났다. 이 법이 포괄하는 내용이 워낙 광범위하고 중요한 조치들을 담고있어 우리는 거듭 신중한 운용을 강조해 왔다.
이제 그 동안의 주요 집행 내용을 살피면, 당국이 결코 서두르지 않고 충격을 되도록 줄이는 방향에서 법 운용에 신중을 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경제구조의 유기성이나 경제활동의 보수적 측면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법 운용자세는 올바른 것이다.
그런데 물가당국은 이번 주안으로 또 하나의 중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한 모양이다. 이 법이 금하고 있는 소위 불공정거래행위의 구체적인 사례를 지정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 나라에선 처음으로 실시되는 것이므로 업계나 국민의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법은 이미 4월부터 모든 형태의 생산·판매「카르텔」을 금지시킨바 있지만 이른바 경쟁을 제한하는 각양각색의 불공정한 거래유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가이드·라인」이나 예시가 없었다. 이번에 구체적으로 그런 규제대상행위가 지정된다면 좋든 싫든 국내 유통거래질서는 큰 변혁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알려지기로는 이번 조치가 기존 경제 거래관습에 미칠지도 모를 충격과 혼란을 줄이기 위해 그 대상과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한다. 이런 원칙적인 방향의 선정은 너무도 당연하며 동시에 바람직한 접근 방식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상거래 관습은 흔히 오랜 전통의 소산이면서 변천하는 경제사회의 여건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연관을 지니고 있다. 이런 관습과 여건을 도외시한 채 어떤 제도적인 힘으로만 경제활동의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실효도 적을 뿐 아니라 부작용과 혼란이 생기기 십장이다.
따라서 1차 지정에서 모든 불공정을 한꺼번에 시정할 생각은 말고 우선은 가장 보편적이고 불공정의 징후가 명백한 것부터 선별하여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점 최종시안에 올려진 몇 가지 내용들, 예컨대 부당한 거래거절이나 지역별「덤핑」또는 허위 과대광고와 매점매석 행위 등 그 부당성이 현저하고 경제전체에 미치는 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규제되어야할 것들이다.
반면 원칙에서 불공정한 행위라 해도 특정산업 또는 특정거래단체에 국한되는 행위거나 그 사회적 해악이 크지 않은 경미한 거래제한은 1차 지정에서 제외하고 단계적으로 그 범위를 넓히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결국 공정거래의 지향은 그 본래의 이상을 계속 추구해 나가되, 현실은 현실대로 배려한다는 기본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긴요하다. 오랜 관습이나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불가피하게 운용되는 부분적인 거래제한 행위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시차를 두어 행정지도를 해 나간다면 업계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기도 수월할 것은 물론이다.
또 하나「메이커」와 대리점이라는 각 유통단계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거래 관행에서도 불공정한 거래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거래 가운데는 재판가격유지 계약 등 거의 관습화된 행위도 있고 또 판매조직 측의 자본이 영세한데 따른 특수한 거래방식이나 신용거래행위도 있을 수 있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모든 대리점 조직을 일반도매업체제로 바꾼다면 우선 자금 압박이 커질 뿐 아니라 형식적인 생산·유통분리에 그칠 우려도 없지 않다.
이점 각종 도매업의 기능을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나 이런 특수상황들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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