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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요새는 이른바「폴라·루트」를 거치는 여객기는 거의 모두 북극 위를 난다.
그러니까 6천m 상공에선 누구나 북극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북극은 사람들이 좀처럼 접근조차 어려운 신비의 세계였다.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북극탐험가는 기원전 4세기의 희랍인「피테아스」였다. 그는 북극 땅「튤레」는 편편한 지구 끝이며 늘 안개에 덮여있다고 기록했다.
6세기에는 또 「아일랜드」인인 성「브랜던」이 북쭉 바다에서 「투명한 물위의 성」을 만났다는 얘기를 남겼다. 그는 빙산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1893년부터 3년 동안이나 북극을 탐험했던 「난센」은 북극의 밤을 이렇게 적었다.
『북극의 밤처럼 기막히게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미묘한 색채들이 수놓은 꿈나라의 경치와도 같다…. 그것은 형상도 없는 무언의 그림이 연주하는 아득한 꿈과 같은 색의 음악, 언제까지나 길게 뻗치는 「멜로디」다』-.
이런 북극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처음으로 북극점에 도달한 미국인「피어리」는 1909년 4월6일의 일기를 이렇게 적었다. 『드디어 극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주위는 어디를 보나 별로 색다른 곳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그후 1969년에 처음으로 북극횡단에 성공한 영국의 「월리·허버트」의 탐험기를 봐도 조금도 낭만성은 보이지 않는다. 정복의 희열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끈덕지게 극지에 도전해 나갔을까? 결국은 미지에의 호기심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류의 미지에 대한 탐욕스러운 호기심이야말로 문명의 추진력이 되었다.
이렇게 보는 사가도 많다.
호기심은 바로 위험심과 직결된다. 그리고 이것처럼 값진 인간의 자산도 없을 것이다.
위험의 정신이 가득 차 있을 때 나라는 팽창한다. 물론 위험은 지리학적인 것만을 뜻하진 않는다.
북극은 미지에의 탐험에 대한 꿈의 보고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꿈은 결코 아니다.
꿈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보배다. 그리고 꿈의 좌절에도 굽히지 않는 숭고한 인간의지, 무한히 새 꿈을 만들어 나가는 창조의 힘이 있기에 우리는 내일에의 기대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본사의 후원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북극에 발을 들여놓는 김찬삼씨의 여행기가 우리네 젊은이에게 많은 꿈을 안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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