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제국 건설에 첨병 노릇하는 무슬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정교회가 주류인 러시아에서 무슬림이 제국 건설을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첨병으로 나서고 있다. 푸틴이 지난달 18일 크림반도의 합병을 선언하던 의회 의사당엔 정교회 수장 키릴 총대주교의 모습 대신 러시아 무슬림의 최고지도자 탈가트 타주딘과 라빌 가이눗딘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슬람은 러시아의 통치 아래서 더 안정된다'며 합병에 지지를 표했다. 러시아 정부가 와하브주의나 살라피 같은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을 철저히 막고 있다며 크림의 무슬림을 설득했다. 가이눗딘은 지난달 말 크림을 찾아 현지 무슬림 최고지도자를 만나기도 했다. 자신의 웹사이트에선 "신이 크림의 타타르 무슬림에게 러시아의 2000만 이슬람 공동체에 합류하라고 명했다"고 주장했다.

무슬림은 과거 러시아 제국의 확장에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볼가 지역의 이슬람 지도자들은 러시아 남부와 동부 접경 무슬림 주민들에게 '차르(러시아 황제)의 백성으로 살라'고 독려했다. 타타르족은 변경 지역에서 상업을 활성화시키며 영토 안정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스탈린은 크림의 타타르가 나치에 협력했다며 중앙아시아 오지로 강제이주시켰다. 소련 붕괴 후 귀환했지만 러시아가 이들에게 남긴 상처는 깊었다. 실제 합병이 발표되자 크림의 30만 타타르인 중 5000명 정도가 서부 우크라이나로 피해갔다.

푸틴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합병 선포 때 타타르어를 크림의 공용어로 인정한 데 이어 이달 초엔 과거 피해에 대한 보상과 독립적 권리 보장을 약속했다. 그러자 '크림 정부에 협력하겠다'는 타타르 지도부의 화답이 나왔다. 크림의 성공적인 통치에 타타르 무슬림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지난해 말부터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에 대한 입장 정리를 놓고 크림 무슬림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자 러시아는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 암약했던 전 KGB 요원을 침투시켜 공작을 펴다 들키기도 했다.

푸틴은 무슬림의 협력을 통해 영토 확장 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견제 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란·시리아 등 미국과 껄끄러운 이슬람 국가들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인다는 포석이다. 러시아는 유럽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국가다. 유독 무슬림만 폭발적인 인구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2050년쯤엔 이슬람 국가로 탈바꿈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