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깃거리 많은 나라 좋겠다지만 사나운 마누라와 사는 것과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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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국관 들른 찰스 왕세자 부인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왼쪽)이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가운데) 작가를 만나 “내가 꼭 읽어보고 손자들에게도 읽어주겠다”고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한 달 생활비 정도만 은행에 있는 홈리스였다.”(황석영)

 “내 소설은 외국에서도 많이 팔리지 않았다. 내 소설이 가진 문제였다.”(김영하)

 “제가 글을 쓸 무렵 소설가는 시골 출신의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제 소설의 주인공도 저도 좀 그렇다.”(이승우)

 8일부터 3일간 열리는 영국 런던도서전의 주빈국 한국관을 풍성하게 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작가들이다. 소설가 황석영·이문열·이승우·신경숙·김영하 등 10명이 전시장 안팎에서 진솔한 얘기로 서구의 독자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황석영 작가는 ‘문학과 역사’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서구 작가들이 ‘얘깃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좋겠다’고 하는데 그만큼 역사적으로 트라우마도 많고 고통도 심했다는 건데 썩 기분이 좋진 않다. 난 ‘너의 자유가 부럽다’고 했다”며 “역사와 사회로부터 작가가 책임을 가져야한다는 중압감 속에 사는 건 사나운 마누라와 사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기도 한 김영하 작가는 “(문학을 하는) 우리는 비관적으로 아픈 부분을 본질적으로 좋아하게 생겨 먹었다”며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문제를 쓰는 걸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칼럼 쓰는 데 따른)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 집에서 빵을 굽고 쿠키도 굽는다”고 말했다.

 구체적 작품에 대한 대화도 이어졌는데 이문열 작가는 김삿갓의 생애를 다룬 『시인』을 두곤 “내가 고통받았던 것(연좌제)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요새 제도만 가지고 하면 너무 민낯이어서 역사를 우의적 장치로 썼다”고 소개했다. 신경숙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의 등장인물 중 엄마만 유일하게 1인칭 시점인 것에 대해 “엄마로서 일생을 산 사람, 엄마로서 살고 있고 앞으로 엄마가 될 사람에게 작가로서 유일한 헌사가 ‘나는’이라고 말하게 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 독자에 대한 애정도 드러났다. 황석영 작가는 “(10년 걸친 망명·투옥으로) 한 달 생활비밖에 없던 노인이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된 건 다 독자 덕”이라며 “문화적 열망이 강한 한국에서 태어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 뉴욕 등지에서 3년여 체류했던 김영하 작가는 “결국 문학은 모국어로 하고 나를 깊이 이해하는 게 한국독자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어 외에 다른 언어로 번역된 자신의 작품을 두곤 “오래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가 아이를 데려와 네 아이라고 하고 반갑긴 한데 확실치 않은 느낌”이라고 했다.

 “지금부터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란 질문이 던져지기도 했다. 이승우 작가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글을 쓰지 않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해봤는데요. 읽을 순 있겠지요? 읽을 순 있을 거에요.”

 이날 오후 찰스 왕세자의 부인인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이 도서전의 주빈국인 한국 전시관을 둘러봤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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