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희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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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언젠가 이런 웃지 못할 희극 한 토막이 있었다. 해외에 나가는 사람이 외화를 갖고 출국할 길이 없었다. 그는 어느 어수룩한 양화점엘 찾아갔다. 구두를 한 켤레 맞추며 그 밑창에「달러」를 숨겨 달라고 했다. 1백「달러」지폐 10장을 주었다.
그는 감쪽같이 새 구두를 신고, 태연하게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쾌심의「아이디어」 였다.
그러나 외국서 그 새 구두의 밑창을 들여본 장본인은 깜짝 놀랐다. 지폐는 6장뿐이었다. 4장은 필경 제화공이 적당히 집어넣어 버린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발단이 되어 그 제화공은 절도혐의로 구속되었다. 후일담은 알 수 없지만 외환관리의 비현실성이 빚은「코미디」한 토막이다.
요즘도 공항에선 좀 수상쩍은 기색이 엿보이면, 출국자의 허리띠를 만져본다. 적어도 5천「달러」쯤은 허리띠 속에 숨길 수 있다고 한다.
한때 해외여행자들은 석달을 한도로 한 사람당 1백「달러」의 외화밖엔 허용하지 않았었다. 실로 당치도 않은 액수다. 무엇으로도 그 현실성은 설명할 수가 없다.
유학생의 경우도 매양 딱하기만 하다. 월 체재비 6백「달러」로는 학비 대고 책 사기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이런 여건에서 자연히 고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학은 그만큼 진학에 지장을 준다 .따라서 체재기간도 길어진다. 과연 어느 편이 경제적인지 모를 일이다. 빨리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는 것과 고학, 고학으로 지지부진한 학구생활을 해야하는 변과….
많은 유학생들이 공부도 변변히 못하면서 이국의 음식점에서 설겆이나 하고 지내는 몰골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요즘은 무역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근무자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이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활동비와 활동은 거의 정비례한다.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는 세상에, 한가하게「버스」타고 어슬렁어슬렁 다니며 경쟁을 헤쳐갈 수는 없다.
뒤집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규제가 까다로울수록 사람들의 간계도 지능화 한다. 차라리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쪽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여유도 갖게 한다.
외화도피, 그것은 전연 다른 문제다. 선의의 사람들까지 손과 발을 묶기 위해 그런 기우를 하는 것은 관대하지 못하다.
요즘 관계당국이 외환의 관리규정을 현실화한 것은 한결 해외의창을 밝게 해주는 것 같다. 우리도 이젠「달러」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안도감마저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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