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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전력의 비대칭, 체제의 비대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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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북한발 소형 무인기는 새롭게 등장한 비대칭 전력이다. 지난주 본지가 무인 항공기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하니 이 정도 수준이면 국내에서 2000만원대에서 만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해 8월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5호를 쏘아 올렸는데 당시 발사를 참관했던 한 야당 국회의원은 “‘다목적’엔 대북 영상정보 확보도 포함됐다”고 귀띔했다. 사업비 2381억원이 들어간 아리랑 5호엔 날씨와 관계없이 지상을 찍는 영상레이더(SAR)가 설치돼 있다. 우리는 2000억원대 위성을 띄우는데 북한은 시중의 일제 카메라를 붙인 2000만원대 무인기를 날리니 비대칭이다.

 비슷한 게 북한의 대남 침투용 AN-2기다. 1940년대 말 소련에서 만들기 시작한 구닥다리 비행기인데 “대부분 천과 나무로 만들어져 레이더 포착이 어렵다”(월러스 그렉슨 전 미 국방부 차관보)는 평가가 있다.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을 태워 저고도로 침투할 것에 대비해 남한은 곳곳에 디지털 저고도 탐지 레이더를 설치해야 했다.

 남북 간엔 전력 비대칭만 아니라 체제의 비대칭도 간과할 수 없다. 무인기를 주도했다는 인민군 정찰총국의 수장은 김영철이다. 6년 전 그가 개성공단에 내려와 남한 공장장들을 강당에 모아 놓고 한 말이 있다. “(남한 드라마) 이산에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물 위에 뜬 배’라는 말이 나온다. 민심이 흔들리면 배가 뒤집힌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인용한 남한 드라마의 대사였다.

 열린 사회인 남한은 북한에 속속들이 노출돼 있다. 이번에 북한은 귀환하지 못한 무인기들의 ‘임무 수행 능력’도 거의 파악했다. 소청도·대청도를 S자로 돌았고 파주의 무인기에서만 사진도 200장 가까이 찍었으며, 추락 추정 이유도 남한 군 당국의 발표를 통해 확인했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 무인기가 언제부터 얼마나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확인된 게 없다.

 남한은 정권이 바뀌면 민심의 동향이 실시간 여론조사로 나오는데 북한에선 3대 세습에 대한 민심이 어디까지 갔는지 간접 정보로 확인해야 한다. 남한은 인사청문회로 국정원장 후보자의 소신까지 파악되는데 저쪽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은 언제 보위부장이 됐는지 확정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분단됐던 동·서독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전력의 비대칭은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억제 전력을 투입하면 된다. 하지만 체제의 비대칭은 투자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우리 체제가 우월하다는 당연함이 본능처럼 깔려 있어야 한다. 동시에 무슨 얘기건 할 수 있지만 아무 얘기나 대한민국의 상식이 되지는 않는다는 건전함이 사회를 지배해야 열린 체제의 힘이 유지된다. 4년 전 천안함 폭침 때 정부 발표를 놓고 ‘믿는다’ ‘못 믿겠다’로 우리 사회는 홍역을 치렀다. 이번에도 무인기를 놓고 SNS 일각에선 ‘북한제네 아니네’라는 얘기가 도는 모양이다. 이게 4년 전처럼 천안함 공방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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