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반달리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밤중에 청소년들이 공원으로 뛰어들어 수백 주의 나무들을 온통 꺾어 버렸다. 공원과 이들 사이에 무슨 시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또 한번은 소년들이 어느 창고에 스며들었다. 이상하게도 없어진 물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이들은 창고에 숨어 집단 생활을 한 것뿐이다. 나중에 이들은 윤간 사건을 저질러 경찰에 알려지고 말았다.
영국 「레스터」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호워드·존스」는 이런 현상을 「청소년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불렀다. 서기 455년께 「게르만」인의 한 부족인 「반달」족이 「로마」를 점령했을 때 광폭한 파괴 행위 등을 저지른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이런 「반달리즘」의 특징은 우선 집단적인 행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영국의 한 학자가 조사한 것을 보면 2백명의 10대 범죄자 가운데 단독범은 불과 57명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공범의 관계에 있었다.
10대의 후반은 흔히 군거성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회 심리학자들은 그 보다는 정서의 불안정을 무엇보다도 심각한 동기로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우선 가정의 불화나 부모의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징후다.
어머니는 가정의 분위기를 지키기보다는 가정 바깥에서의 일에 더 관심이 많으며, 가장은 또 그 나름으로 가정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며, 가정 안에서는 다만 지쳐 있거나 휴식을 원한다. 따라서 아이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실감할 기회가 없다. 밖으로만 뛰쳐나가고 싶어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정신의 가치를 불신하거나 경멸하려고 한다. 「피와 땀의 노력」·「성실과 근면의 보람」보다는 안락과 안일에 마음이 끌려 있다. 그들은 앞선 세대들이 어떤 고초와 노력으로 오늘을 쌓아 놓았는지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안락만을 인생의 목표이며 전부인 줄로 안다.
이런 풍조는 현대가 짊어진 세계 공통의 현상이며 고민인 것 같다. 영국의 경우 20년 사이에 청소년의 범죄는 무려 1백17%나 늘어났다. 세대별로 보아 14세부터 16세까지의 증가율이 2백16%나 된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한 것 같다. 며칠 전 16∼19세의 청소년들이 산에 천막을 치고 군거하면서 야릇한 범죄들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멀지않아 자신의 발등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모든 부모들은 깊은 잠을 들 수 없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