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왕 그로스의 굴욕 … 1년 새 자금 55조 빠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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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왕’ 빌 그로스가 운용하는 핌코의 토털리턴펀드(TRF)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5월부터 올 3월까지 11개월 연속 자금이 TRF에서 흘러나가고 있다”며 “그 규모가 모두 520억 달러(약 55조원)에 이른다”고 6일(현지시간) 전했다. TRF의 자산 가운데 18.3% 정도가 줄어든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3월 말 현재 TRF 전체 자산은 2319억 달러(약 245조원)다. 여전히 채권형 펀드로선 세계 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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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돈을 뺀 곳은 기관투자가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부자동네인 오렌지카운티 공무원퇴직연금은 최근 TRF에 맡겨둔 1200만 달러 전액을 회수했다. 투자회사인 콜럼비아인베스트먼트는 핌코에 13억 달러를 위탁해 운용해왔으나 최근 다른 자산운용사를 선택했다. 두 곳 모두 10년 이상 그로스에 돈을 맡겨온 곳이다. 단골들이 그로스를 떠나고 있는 셈이다.

 수익률이 나빠서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로스의 투자전략에 동의하지 않는 기관투자가가 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그로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QE) 축소를 준비하고 있던 지난해에 미 국채를 대거 사들였다. 당시 그는 “QE가 시작돼도 미 국채 값이 많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미 국채 값은 QE 시작 전부터 하락했다. 그 바람에 TRF의 최근 1년 수익률은 -1.5%에 이른다. 미 국채를 주로 편입한 다른 펀드들보다 좋지 않은 수익률이다. 그는 2010년 말 Fed가 2차 QE를 단행했을 땐 거꾸로 미 국채를 팔아 치우는 헛다리를 짚기도 했다.

 그로스의 미 국채 고집은 내분으로 이어졌다. 핌코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모하메드 엘에리언이 “모기지 채권과 외국 국채, 회사채 등을 더 많이 사들여 수익률 하락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다 그로스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그는 올 1월 핌코를 떠났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그로스의 2선 후퇴 등) 내부 조직과 투자 전략이 바뀌기 전까지 기관투자가들의 탈출은 진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실제 노스다코다주와 캘리포니아 프레스노시 연기금 펀드가 핌고의 TRF를 예의주시 대상에 올려 놓았다. 여차하면 돈을 뺄 태세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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