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참정"|키신저의 눈과 서구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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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유럽」사람들이라고 하기보다는 세계사람들의 눈은 화산과 지진의 나라 「이탈리아」에 쏠려있다. 그건 최근 이 나라를 흔든 지진이 1천명에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데다가 무슨 무서운 전염병을 퍼뜨릴 위헌성이 있대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치적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져가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공산당이 정권을 잡거나 그 일부를 차지할 것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6월20, 21일에 있을 총선거가 보나마나 그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해버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가능성만으로도 엄청난 긴장과 불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공산당이 공업화나 민주화에서 선진국에 속하는「이탈리아」에서 선거라는 서구적인 절차를 통해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엉뚱하고도 맹랑한 일이다. 게다가 「유럽」사람들로 쳐선 그런 이를테면 「변칙」이 끼칠 영향들을 남의 나라의 일로 쳐버리기에는 여러모로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다.
지금 그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 뿐 아니라 흔히 말하는 「이탈리아」위기라는 것의 뜻을 어떻게 새겨야하는가 라는 당장의 문제에서부터 적지 않은 혼선이 빚어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한가지 예가 이미 널리 보도돼온 「헨리·키신저」미국무장관의 이른바 「서구도미노이론」이다.
그는 그러한 사태에 대한 그 자신이나 미국의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는 강경한 말로 표현해 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서구라는 땅덩어리는 지금 「도미노」패짝처럼 연이어 자빠질 위기 앞에 놓여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이탈리아」공산당이 몇 해 전부터 한결 같이 내세워온바 공산주의와 「가톨릭」세력간의 소위 「역사적 타협」이 평화의 새 국면을 열어놓을 하나의 획기적인 순간을 맞으려는 것일까? 지금 「유럽」사람들 간에 한 가지 공통된 게 있다면 그것은 우선은 그들답게 양쪽에 다같이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공산당의 정권으로의 접근이 당사국뿐 아니라 서구전체에(그리고 동구에서까지도) 기존해온 질서들을 무슨 지진처럼 뒤흔들 것으로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키신저」의 경고를 선뜻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것은 복잡한 현실을 너무 단순화하고 필요이상으로 일반화해서 본 흠이 있다는 까닭에서다.
「키신저」가 말해온 것으로 전해져온 「도미노」이론에 따른 「유럽」의 모습이란 대충 이렇게 그려진다. 「이탈리아」공산당이 정권을 잡거나 중요 각료직을 차지하면서 우선 집단안보체제인 NATO가 위협을 받게 된다.
정치적으로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등 인근 나라들에 심리적인 영향을 끼쳐 대서양공동체의 유기적 기능을 금가게 한다.
그러나 「유럽」사람들이 보고 아는 서구란 그렇게 단순한 하나의 덩어리로는 안돼 있다. 「이탈리아」공산당의 세력이라는 것만을 놓고 본대도 그렇다. 6백30석의 의회에서 1백97석을 차지했고 전 후 줄곧 제l야당의 자리를 차지해온 「이탈리아」공산당은 서구공산당분포에서도 특수한 존재다.
공산당을 빼놓고는 그럴싸한 대체정당이 마련돼있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탈리아」는 유별난 경우에 속한다. 기민당이 30년 동안을 계속 제1당으로 집권해오면서 행정부를 서른여덟번이나 갈아야했던 불안정으로 일관돼 왔다는 것 또한 그렇다. 「나토」의 붕괴결과에서도 「키신저」 「도미노」론의 서구비평가들의 태도는 유보적이다.
공산당의 「이탈리아」군부 침투도도 딴 서구나라, 이를테면 「포르투갈」보다 훨씬 미미하다는 것도 그들은 아울러 지적한다.
공산당이 참여하는 「이탈리아」란 「나토」로선 지극히 거북스런 존재일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나토」, 나아가서는 서구적 질서의 안보의 붕괴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런던=박중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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