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달라이 라마에 가려진 티베트 현대사의 거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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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호 12면

“티베트의 안정을 위해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시오.”

티베트 혁명가 푼초 왕게

티베트 공산당의 창시자이자 사회주의를 통한 티베트 독립을 꿈꿨던 혁명가 푼초 왕게(일명 푼왕·사진)가 지난달 30일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푼왕은 지난 20여 년 동안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등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편지를 보내 ‘달라이 라마를 귀국시키고 티베트 분열주의 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해 왔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민족위원회 부주석을 지낸 푼왕은 중국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망명정부를 이끌며 티베트 독립운동을 전개해 온 달라이 라마에 비해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푼왕은 티베트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21년 당시 티베트 땅이었던 현재의 쓰촨성 바탕(巴塘)에서 태어난 푼왕은 17살이던 37년 티베트 공산당을 창건했다. 당시 티베트를 지배하고 있던 국민당 정부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치던 그는 49년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과 손잡고 티베트 독립을 추진했다.

50년 중국이 티베트를 강제 합병하면서 달라이 라마를 수반으로 자치정부를 세우려던 푼왕의 꿈도 산산조각났다.

당시 15세의 달라이 라마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외면당했고, 51년 베이징에 대표단을 보내 중국 정부와 협상에 나섰다. 푼왕은 통역을 맡아 ‘티베트의 평화적 해방을 위한 17개조 협정’을 이끌어냈다. 중국의 통치권을 인정하면서도 자치를 보장받겠다는 시도였다. 하지만 중국은 3만 명의 군대를 보내 수도 라싸를 점령하고 무력통치를 시작했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탈출해 망명정부를 세운 이듬해인 60년. 푼왕은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인 친청교도소에 수감됐다.

18년간의 혹독한 투옥생활을 마치고 78년 출소한 푼왕은 중국의 티베트 분열정책을 비판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을 중국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했다. 중국 정부는 그를 전인대 민족위원회 부주석에 임명하는 등 회유했지만 그의 요구를 들어주진 않았다.

푼왕의 사망 소식을 들은 달라이 라마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진실한 친구였다”고 애도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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