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1조원대 특허소송 승리 이끈 코오롱 이웅렬 회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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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호 18면

이웅렬(58·사진) 코오롱 회장의 얼굴이 모처럼 펴졌다. 미국의 화학기업 듀폰과 1조원대 소송을 벌여 왔던 코오롱이 항소심에서 대역전승을 일궈 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제4순회 항소법원은 듀폰과 코오롱의 아라미드(aramid) 영업 비밀 사건 항소심에서 “코오롱이 패소한 1심 판결은 무효이며 재심을 명령한다”고 판결했다. 더욱이 1심에서 듀폰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재판부도 교체하도록 했다.

화학 공룡 듀폰에 극적인 역전승

아라미드는 고강도 합성섬유로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5배나 강도가 높고 섭씨 500도의 열에도 견딜 수 있어 ‘꿈의 섬유’라 불린다. 현재는 방탄복·헬멧·타이어 등의 소재로 활용되지만 향후 전기차나 경전철, 항공기 등에 두루 활용될 수 있다. 이날 판결로 듀폰에 9억2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전 세계에서 코오롱산 아라미드 제품의 생산·판매를 금지토록 한 1심 판결은 파기됐다.

애초부터 이번 재판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됐다. 일본 데이진과 함께 세계 아라미드 시장의 80%를 장악한 듀폰은 떠오르는 경쟁자 코오롱이 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총력전을 펼쳤다. 코오롱으로선 1심 재판부가 내린 1조원 배상금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듀폰 측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149건의 영업 비밀 상당수가 이미 1984년 듀폰과 네덜란드 회사가 벌인 소송 과정에서 공개돼 보호가치가 없어졌다는 점을 물고 늘어졌다.

이 회장은 4일 경기도 과천 본사로 출근해 항소심 결과를 보고 받고 향후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항소심 재판으로 코오롱은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 2월 계열사가 운영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건 후 침체됐던 그룹 내 분위기도 한껏 고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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