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김찬삼 교수 세계 여행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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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란」의 농촌은 가난해 보였다. 도시에 사는 부유층이 왕이나 귀족 못지 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데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했다. 이들에게 한가지 풍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다.
남쪽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많은 시골 사람들을 사귀었는데 한결같이 마음씨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라는 거의 사막이 차지하는 만큼, 물이 몹시 귀하다. 「카스피」해 연안의 녹색지대 이외의 「이란」의 농업은 사막과의 싸움이다. 즉 물은 어떻게 얻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태양의 혜택은 많이 받으므로 물만 있다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인구는 물의 양에 정비례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물이야말로 이 나라의 생명이다. 치수란 것이 더욱 절실히 느껴지며 우리나라에서 물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생각인 것 같았다.
시골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팔레비」 국왕이 진보적인 정책을 쓰고 있어서 농촌을 부강하게 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념뿐이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석유는 무진장으로 묻혀 있을 뿐 아니라 펑펑 쏟아져 나와 돈을 많이 벌어들인다고는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것이 농촌에까지 미치지는 못한 것 같다. 이 나라 농촌이 빈곤한 것은 물론 행정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이 나라의 문맹율이 60여%를 차지할 만큼 개화하지 못하여 농민들 스스로가 개척하지 못하는데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 나라는 이같이 문맹자가 많아서 글자로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기 때문인지 방송은 얼마만큼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런데 「트랜지스터」를 찾고 있는 사람들은 보았지만 거의 일본제였다. 일본의 상품이 얼마나 세계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노동력 수출이 아니라 일본처럼 상품의 수출을 할 수 없을까. 우리의 기술로도 이 나라 시골 사람들이 볼만한 「라디오」 따위는 얼마든지 훌륭한 것을 만들어 보낼 수도 있다고 느꼈다.
이번 「이란」여행에서 내가 꼭 구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눈물단지」(누호)다. 13년 전 이 나라에 왔을 때 서울 「테헤란」의 박물관에서 「눈물단지」를 보았는데 이것은 값진 골동품으로서 우리나라 고구려 백자보다 더 귀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어이 구하려고 시골에서 사귀는 사람마다 값은 고하간에 눈물단지를 구할 수 없는가 하고 물어 보았다. 이 「눈물단지」는 유리로 만든 목이 구부러진 작은병인데 눈물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입이 넓게 되어 있다.
이것은 주로 옛날 이 나라의 아낙네들이 자기 남편이 먼 여행을 떠났을 때 쓸쓸하여 흘리는 눈물을 스스로 받아 두었다가 남편이 정작 돌아왔을 때 그것을 보이며 이같이 당신만을 생각하며 정조를 굳이 지켰다는 증거품으로 썼다는 것이다.
옛 「페르샤」여인의 장신구로서 가장 매혹적인 눈물단지이기에 이번 여행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구해 보려고 했으나 하도 귀하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엿장수 노릇이나 오래하면서 구해 보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았다.
시골에서도 도시 못지 않게 미인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 콧날이 서고 눈망울이 큰 것이 특색이다. 이 나라는 분명 미인의 나라다. 옛 「페르샤」여인들도 이같이 아름다웠을 텐데 이런 미인이 흘린 눈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며 이 눈물을 고이 간직해 두던 그 눈물단지는 얼마나 찬란했을 것인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어 하니까 함께 타고 가던 어떤 시골 중년 부인이 자기가 갖고 다니는 물통을 준다. 잔이 없어 입에 대고 마셔야 하는데 남의 물통에 입을 대는 것은 「간접 키스」가 되는 것 같아서 머뭇거렸더니 어서 마시라고 하면서 고맙게도 그 물통을 나의 입에 대주기까지 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금남의 여인에게서 뜻하지 않은 이웃 사랑을 느꼈는데 이 나라 여자들이 자유스러운 것도 「이슬람」교의 「루터」파라 할 개혁적인 「시아」파를 믿는 때문이라고 본다. 종교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가를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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