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억 원의 사립 중·고교 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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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사립 중·고교에 대한 국고 보조론이 정부·여당 정책「레벨」에서 대두하고 있다고 한다.
연초 문교부가 취한 교원우대 호봉 조정조치에 따라 76학년도 중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 부족액 약 92억원을 추경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처는 정부의 중·고교 평준화시책이 가져온 사립학교 재정난 해소를 위해서 정부가 오랜만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평준화 시책이 아니더라도 우리 나라 대다수 사학들은 거의 수익재산을 못 가져 법정 학교 전입금 조차 낼 수 없는 형편에 있음은 주지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중·고교의 시설·교원·운영 등의 평준화를 기한다는 명분아래 강행된 중학 무시험 진학제(69년)와 5대 도시 고교 추첨배정(74년)제의 실시는 사학의 재정을 구제할 수 없는 파탄상태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제도 때문에 사학은 준 공립교육기관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원 인건비의 절반과 시설비의 전부를 국고에서 보조받는 공립학교와는 달리, 오직 학생들의 공납금만으로 평준화시책의 무거운 짐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학교운영비의 70%선에 머물러야할 인건비가 대다수 사학의 경우 90%선에 이르렀으며, 이에 따라 오늘날 우리 나라 사학에 있어서는 학교운영의 교육적 의미란 사실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같은 사학의 운영난에 설상가상 격으로 올해 문교부는 교원 봉급을 45% 인상함으로써 더욱 빨리 파국으로 치닫게 했던 것이다.
현재의 여건 하에서는 경력이 많은 교원이 비교적 다수를 점하는 대부분의 명문 사학들이 봉급과 상여금·교재연구비·운영비들의 지출을 하고 나면 결국 1년에 2천여만원의 결손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돼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교부의 수입원천을 무시한 봉급인상시책은 올해 한해만으로도 1백 7억원의 결손을 초래케 했을 뿐 아니라 사학의 이 같은 재정위기는 해가 갈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음도 공지된 사실이다.
결국 1천 2백여 사학 가운데 적어도 2백개 교가 이 같은 재정위기에 직면했으며, 전체적으로 올해 2백 86억원의 부족재원을 메울 길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사학지원을 위해 92억원을 추경에 반영한다해도 그것이 사학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 필요한 액수에는 절반도 못 미친다.
이런 식의 미봉적인 국고보조로써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사학의 위기를 장기화·고질화시킬 염려마저 없지 않은 것이다.
사학이 우리 나라 전체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추어보거나 그들이 6조 4천억 원의 시설투자를 통해 국가재정의 직접투자분을 대신 부담했던 사실을 먼저 상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사학들이 공립에 대해 심히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야할 이유는 추호도 없다. 사학의 육성이야말로 오히려 국가교육 발전에 필수적인 것이며 충분한 국고지원이야말로 그 시정의 첫걸음일 것이다.
다시 말해 사학은 공립과 마찬가지로 정부예산에서 일정한 비율로 당연히 보조금을 지급 받아야 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할 권리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문교당국이 장기적 안목에서 사학육성을 위해 입시제도를 개혁하여 사학의 재량권을 강화해 주거나 사학진흥금고를 설립하거나, 혹은 교육세 신설을 통한 지원을 확대하거나 하는 대책을 강구할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사학의 운영난은 단지 사학재단의 부실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사학 육성책이 조속히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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