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BMW 딩골핑 공장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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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독일 바이에른주의 주도인 뮌헨에서 아우토반 92번을 타고 북쪽으로 1백㎞를 가다보면 인구 1만8천여명의 작은 도시 딩골핑이 나온다. 시가지엔 아직도 중세도시의 자취가 배어 있다.

그러나 외곽으로 조금 나가면 유럽 최대의 자동차 생산거점의 하나인 BMW 딩골핑 공장이 웅대한 자태를 과시한다.

BMW의 주력 차종인 3, 5, 7 시리즈를 연간 28만대 생산하는 이 곳은 공장 부지만도 1백80만㎡(54만5천여평)에 이른다.

지난 18일 오후 1시쯤. 공장 입구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은 시 인구보다 많은 2만3천여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공장치고는 다소 한적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내려 공장 정문에 도착하자 오전 근무를 마친 근로자들이 왁자지껄 떼를 지어 퇴근 길에 오르느라 분주했다. 이 시각 공장 안에서는 2교대 근무에 들어간 오후 근무조가 각자 맡고 있는 설비라인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여느 자동차 공장과는 달리 공장 규모에 비해 조립라인마다 근무하는 근로자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아직 휴가철이 아닌데 왜 일까.

이같은 궁금증은 작업라인을 돌다 우연히 눈에 띈 노동조합의 공고문을 통해 풀리게 됐다. 그 내용은 회사와의 합의에 따라 주당 근무시간이 35시간 이상 초과하지 않도록 휴가를 사용하라는 권고였다.

조립라인별로 생산자동화가 최대 97%까지 돼 있는 데다 인력을 탄력있게 활용하고 있어 다른 공장보다 근무 작업자의 수가 적어 보였다.

이 회사는 현재 'BMW 방식(Formel)'이라 불리는 유연한 탄력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즉 일거리에 맞춰 공장가동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이 회사 경영진은 노조와의 자율합의에 따라 주당 공장가동 시간을 60~1백40시간으로 정했다. 주문이 많이 몰릴 경우에는 매일 2교대의 기본 근무에다 야근이나 잔업 조업을 통해 풀가동을 한다.

그러나 자동차 수요가 감소하면 그에 맞춰 공장가동 시간을 줄이고 라인별로 근무자를 전환배치한다. 이에 따라 공장은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일주일에 4~6일간 근무한다. 또 하루에 근무를 2교대 또는 3교대로 번갈아 할 수 있다.

공장을 안내해준 클라우스 헨닝 호프만 엔지니어는 " 근로자 개개인의 작업시간은 공장의 기계 가동시간에 맞추고 있다"면서 "근로자들은 자신의 의무 작업시간을 채우기만 하면 돼 여가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고 회사 측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양자가 상생( Win-Win) 할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제도 덕분에 회사는 시장의 경기변동에 맞춰 생산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경비절감 효과를 톡톡히 봤고 생산성은 이전보다 최대 40%까지 올라갔다.

근로자들이 얻는 혜택도 적지 않다. 조립라인 옆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볼프강 슈미트 사원은 "이 제도 덕분에 비교적 고용안정이 보장됐으며 휴가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어 노조원들도 반기고 있다"고 했다.

BMW는 현재 18년간 한 차례의 파업도 겪지 않은 대기록을 달성했다. 덕분에 지난해에도 41년 연속 흑자와 더불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매년 임금과 작업배치를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 없이 노사대립을 거듭하는 한국자동차 업계가 주목해야 할 사례가 아닌가 싶다.

뮌헨=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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