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요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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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빵 한 조각을 훔치려다 반평생을 감옥살이한 「장·발장」을 사람들이 동정하는 이유는 훔치는 행위 자체를 용서해서가 아니라 그 딱한 정상 때문이라 하겠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도독들의 범행에는 정상을 참작할만한 여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 하다.
지능화한 범죄 수법, 조직화한 범죄경향, 그리고 가난하면 도둑질도 당연한 일처럼 생각하기도 하는 일부의 범행심리가 이같은 사실을 너무나도 잘 말해주고 있다.
최근 낫도둑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도 지능화한 범죄 수법의 한 단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치안본부 집계에 따르면 도범 소탕령이 내려진 3월20일부터 4월5일까지 2주일 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2천8백19건의 도난사건 중 낮도둑이 1천1백28건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어찌하여 이에 대처할 효과적인 대책이 없다는 말인가.
경찰과 방범대원의 순찰 및 방범활동이 강화되고 통금단속이 철저해졌을 뿐 아니라, 주민들의 경계심이 강한 야간보다 오히려 대낮이 도둑질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사유야 있을 법한 일이다.
더우기 봄철을 맞아 가족들의 나들이가 잦아 집을 비우거나 집 보는 일이 허술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허점을 노려 수금원이나 월부장수를 가장하여 대문을 열게 하고는 어린 가정부나 노약자를 위협한다는 행위는 용서될 수 없다.
이리하여 도둑들의 치밀한 계획과 교묘한 속임수에 시달려온 시민들은 심한 의심증에 걸려 신원을 확인하기 전에는 문을 열어주지 않게 되어 낯익지 않은 친척이나 방문객들이 대문 밖에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할이 만큼 돼버렸다.
특히 지능적인 범죄 수법에 익숙해진 도둑들이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떼지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통례가 된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번 도범일제 소탕기간에 검거된 도둑중 조직 요도단이 27개파 2백27명이나 된다고 하니 우려할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조직범죄와 군도가 시민생활과 사회질서에 끼치는 위기와 피해는 단독범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함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또한 요즘 도둑들은 뻔뻔스럽기 그지없고 털끝 만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으며 마치 할 일을 한 것 같은 태연한 태도다. 『도척이가 공자를 꾸짖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뚤어진 심리상태에 있는 자들조차 있으니 문제는 용이하지가 않다. 비록 『사흘 굶어 남의 집 담 뛰어넘지 않는 이 없다』는 속담이 있긴 하나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도둑질을 하나의 기술로서 습득하고 직업이나 생활수단처럼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도둑들의 밤낮없는 기승으로 인해 명랑해야 할 시민생활에 더 이상 그늘이 드는 일이 없도록 치안당국은 도둑예방과 검거에 더욱 힘써야만 하겠다.
이번의 도범소탕작전은 종전처럼 중도에서 흐지부지 그만두는 일없이 계속 추진하여 「도둑없는 사회」를, 이룩하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와 함께 시민들도 깊이 반성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도둑이 들었을 때 『도둑이야』하고 소리쳐 본들 고개조차 내밀지 않던 이웃도 『불이야』라고 고함치면 모조리 뛰쳐나온다는 말이 있다. 남의 집이야 도둑을 맞든 말든 내 집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습성화한 이같은 사고방식은 우리 국민이 마땅히 극복해야 할 과제다. 현대사회는 이웃과 이웃이 사는 지역사회가 안전해야만 내집도 비로소 무사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각자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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