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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맥아더 … 고객이 곧 우리 호텔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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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한국 최고(最古)의 호텔이다. 1914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딱 100년 됐다. 한국 호텔의 역사가 곧 조선호텔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징성을 가진 호텔 총지배인은 누굴까. 왠지 세련된 백인일 거란 상상을 했다. 하지만 만나보니 부산 억양이 묻어나는 까무잡잡한 얼굴의 한국인, 아니 재미교포 2세인 브라이언 백(48·백경태)이었다. 1981년 조선호텔이 웨스틴조선호텔로 이름을 바꾼 후 첫 한국계 총지배인이다.

-100년 역사라니. 그간 얽힌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마릴린 먼로, 맥아더 장군 등 우리 호텔에 투숙했던 사람이 곧 우리 호텔의 역사다. 우리는 한국 근현대사의 희로애락을 목격해왔다. 3대, 4대가 함께 이용하기도 한다. 지난해엔 1963년 결혼한 고객이 결혼 5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지금 중견 기업 회장인데 당시엔 대학생이었다더라.”

-솔직히 총지배인으로 부임한 건 2년이 채 안됐다. 호텔의 지난 역사보다 앞으로의 미래에 더 관심이 있겠다.

“두 가지 다 중요하다. 전통을 이어나가면서도 새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역시 서비스가 중요하다. 그냥 잘 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고객에 따라 서비스를 차별화해야 한다. 예컨대 관광 온 사람에겐 경복궁 문 여는 시간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업차 온 사람에겐 피트니스 센터 영업시간과 업무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이를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그래서 6개월 전부터 CL(Chosun Loyal )팀과 PS(Post Stay)팀을 운영하고 있다. CL팀은 우리 호텔에 처음 오는 고객을 담당한다. 고객 재방문이 CL팀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호텔 고객이 굉장히 까다로울 것 같지만 어찌 보면 단순하다. 알아봐주는 게 중요하다. 대접받는 느낌을 주니까. PS팀은 재방문 고객을 위한 팀이다. 고객이 체크아웃 한 후 객실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고 이를 기록한다. 칫솔이나 물컵 위치가 반대 방향에 놓여있으면 왼손잡이일 가능성이 높다. 다음 방문할 땐 미리 알아서 위치를 바꿔놓는다. 개인 VIP서비스인 PTOC(Personal Touch of Chosun)도 있다. 매년 20회 이상 투숙하는 VIP고객 대상인데, 방문 때마다 투숙객 이름이 새겨진 머그컵·수건·슬리퍼·목욕 가운·침구류 등을 제공한다. 현재 PTOC고객은 70명이다. 한국인과 외국인 비율이 4대 6 정도다.”

-경력이 특이하더라. 왜 호텔리어가 됐나.

“한번도 호텔리어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7살부터 삼성같은 대기업 대표가 꿈이었다. 토목공학을 전공 후 10년 동안 건설 컨설팅 업계에서 일했고, 8년 정도 내 회사를 운영했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어느 날 아내가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게 과연 좋은 삶이냐’고 묻더라. 과장 안하고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더라. 그때 아들이 9살이었는데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었다. 바로 사업을 접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3개월 즈음 지났을 때 웨스틴 리조트 괌 총지배인이 세일즈 마케팅 관련 컨설팅을 맡겼다. 그전에 리조트 관련 컨설팅을 해서 여러 호텔 총지배인들과 친했다.”

-해보니 어떻던가.

“돌이켜보니 호텔은 큰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었다. 내 회사는 아니지만 다양한 부서에 많은 사람이 오간다. 호텔업계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당시 총지배인의 배려로 3년 동안 호텔 전 부서를 경험했다.”

-늦은 출발 치고는 빠른 시일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정말 노력했다. 3년 경험만으론 당연히 부족한 거 아닌가.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부산 사람 성격이 무지 급한데, 나도 그렇다. 또 궁금하면 못 참는다. 낮에 호텔에서 궁금하다고 생각한 내용은 그날 밤 집에 와서 공부로 해결했다. 2006년 W서울 워커힐 오픈 때 객실 팀장을 맡았는데 1년 만에 부총지배인까지 올라갔다. 진정한 호텔리어가 되려면 호텔 개관을 해봐야 한다. 기존 호텔은 시스템이 다 갖춰 있지만 호텔 개관은 정말 ‘맨땅에 헤딩’이기 때문에 실력이 드러난다. W서울 워커힐은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의 결정판이다.”

-총지배인은 호텔리어의 꿈의 자리다. 6년 만에 그 자리에 오르다니.

“운이 좋았다. 2005년 10월 부티크 호텔인 아쿠아 리조트 사이판의 총지배인을 맡았을 때 37살이었다. 지금은 40대 초반 총지배인이 많지만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 가슴이 떨리는 한편 걱정도 됐다. 다행히 6개월 동안 시스템을 잘 갖췄고, 쉐라톤 라구나 괌 총지배인으로 발령났다.”

① 괌의 쉐라톤 라구나 총지배인 당시 브라이언 백(맨 왼쪽) 총지배인. ② 1914년 조선호텔 개관 모습. 70년까지 이 외관을 유지했다.

-본인이 근무하지 않는 다른 호텔도 다니는 편인가.

“당연히 지금도 1주일에 한번은 호텔에 간다. 5성급 호텔만 가는 건 아니다. 3,4성급 호텔도 간다. 밥도 먹고 로비에 앉아 보기도 한다. 숙박하면 객실 상태를 집중해서 본다.”

-최고의 호텔은 어디인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다. 진심이다. 내가 총지배인을 맡기 전부터 한국에 올 때면 늘 머물 만큼 좋아했다. 사업차 1년에 서너번 서울에 머물었는데, 그때마다 조선호텔을 이용했다. 처음 왔을 때가 1993년이었는데 무엇보다 잠자리가 편했다. 내가 좀 까다로운 편이라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자는 편인데, 이상하게 조선호텔만 오면 집처럼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또 올 때마다 직원 서비스에 만족했다. 도쿄에 갈 때도 늘 도쿄 웨스틴에 묵는데 지금은 확실히 우리 호텔 서비스가 더 뛰어나다고 자신한다.”

-국내의 외국 체인 호텔 총지배인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내가 웨스틴조선 총지배인 물망에 올랐을 때 후보 7명 중 나 빼고는 모두 백인이었다고 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히 아시아에선 백인 총지배인을 선호했다. 호텔 얼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얼굴 마담보다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은 것 같다. 특히 나는 한국어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소유주는 신세계지만 총지배인은 웨스틴 계열 운영사인 스타우드 측이 파견한다). 솔직히 어깨가 무겁다.”

-총지배인은 어떤 일을 하길래.

“다 한다. 농담같겠지만 새벽 2시에 술 취한 고객이 총지배인 나오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 고객 불만을 해결해주는 게 총지배인 업무다. 솔직히 나도 총지배인이 되기 전엔 하는 일도 없는 사람에게 왜 저렇게 월급을 많이 주나 생각했는데 역시 단 돈 천원이라도 더 받으면 그만큼 일을 더하더라. 호텔은 보통 사람이 상상도 못하는 일이 수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브라이언 백(48)
1966년 부산 출생
1976년 미국 이민
1989년 UCLA 졸업(토목 공학 전공)
1990~1993년 괌 PCI(Pacific Consultants International·건설 컨설팅) 프로젝트 매니저
1993~1999년 IMC(International Management Consultants·건설 컨설팅) 설립 후 대표
1999~2002년 웨스틴 리조트 괌 국제마케팅 이사
2003~2005년 W서울 부총지배인
2005~2006년 사이판 아쿠아리조트클럽 총지배인
2006~2012년 괌 쉐라톤 라구나 총지배인
2012년~현재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총지배인


사는 곳: 서래마을
근무하는 곳: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운동하는 곳: 서래마을 인근 공원
장보는 곳: 초록마을(유기농 매장) 서래마을점
자주 가는 식당: 종로 뚝배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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