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1위 「왕위전」에 기대한다-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회=바둑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중앙일보지상을 통해 아셨으리라 믿습니다만 이번 중앙일보·동양방송은 1천만원이라는 파격적 예산으로 제11기 「왕위전」을 갖게되었습니다. 「왕위전」이 이처럼 다른 국내 「타이틀」전 예산의 2, 3배에 해당하는 대규모 「타이틀」전으로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된 것은 보다 알찬 내용의 바둑으로 3백만 바둑「팬」의 성원에 보답하며 한국의 바둑수준을 더욱 높이려는데 큰 뜻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더구나 장기약정의 형식으로 이런 행사를 굳혀놓은 것은 우리 나라 기단사상 전례 없는 일이지요. 조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선….

<왕위전에 큰 기대>
조=「프로」 기사라고 하면 바둑하나만으로 생활의 안정이 돼야합니다만 우리 나라의 경우 기단의 예산이 적어 「프로」 기사들이 바둑에 전념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다른 생계방법을 생각하게되어 바둑에는 정작 심혈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 폐단이 있었읍니다.
김=국가경제에 관한 문제겠지만 중국에서 발상한 바둑을 한국을 통해 전수 받았다는 일본의 바둑이 오늘날처럼 융성할 수 있게된 것은 신문기전의 힘이 크다고 봐야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번 중앙 「매스컴」의 결단은 바둑 「팬」의 한사람으로 그게 기대해마지않습니다.
한=신성한 바둑을 돈과 관련지어서 얘기하기는 뭣하지만 기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간주한다면 풍족한 대우를 해줘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상식이 아닙니까.

<큰 기전에 기사 몰려>
조=우리 나라에 10개, 일본에 13개의 기전이 있는데 기전마다 예산이 다릅니다. 이것은 곧 대국료나 「타이틀」 상금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래서 일본의 경우 뛰어난 몇몇 기사들도 큰 「타이틀」전 몇 개에만 관심을 쏟는 현장을 보이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연히 규모가 큰 「타이틀」전은 내용도 충실하다고 볼 수 있지요.
사회=지난번 조치훈 7단과 등택 9단의 대국 때 온 국민이 관심을 쏟는 것을 보고 느꼈읍니다만 오늘날에 이르러 바둑은 좀더 다른 의미로 해석돼야 하지 않겠는가 느껴집니다. 김 선생은 바둑의 근원이나 원리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계시다고 듣고 있는데요….
김=요순 임금도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이 나와있읍니다만 여하튼 바둑의 역사는 꽤 오랜 것 같습니다.
7백년 전에 이미 바둑의 원리를 설명한 책이 나왔는데 그에 따르면 주역의 이치와 매우 닮아있다고 합니다.
현대를 「컴퓨터」시대라고 하지만 바둑에 관한 한 「컴퓨터」가 인간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실증된 일이 있읍니다.

<전망 밝은 한국기단>
70년엔가 일본에서 「엑스프」70이 열렸을 때 「컴퓨터」와 인간과의 장기·바둑 대국이 있었는데 장기에서는 「컴퓨터」가 이겼지만 바둑에서는 인간이 이겼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둑의 변화가 몇 가지나 되는가 계산해보니까 동그라미가 수천 개나 나와 계산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봐도 그 심오한 원리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한=바둑을 아직도 오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지만 저는 바둑을 예의 경지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작게 보면 인간개인의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지만, 크게 보면 세계평화를 형성하는 요소도 된다고 볼 수 있지 않겠읍니까.
사회=김 선생도 말씀하신 것처럼 바둑이 우리 나라를 거쳐 일본에 건너갔다고 볼 수 있는데도 바둑은 일본에 비해 우리 나라가 다소 뒤지고 있지 않은가하는 느낌이 듭니다. 70년대에 들어 우리 바둑도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이고 있읍니다만 한국바둑을 평가하면….
조=해방 전까지도 국수칭호를 가신 분들이 몇 분 계셨지만 그분들을 전문기사라고 볼 수는 없었지요. 단위를 결정한 것조차 6·25 사변 후였고 「아마」 「프로」를 구분한 것도 60년대에 들어와서 시작된 것이고 보면 한국 바둑은 지금부터라고 봐야겠지요. 따라서 우리 나라 마문기사 가운데는 40대 이상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바둑의 수준이 일본에 뒤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젊은 기사들 가운데 제2, 제3의 조치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 우리 바둑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볼 수 있겠읍니다.
사회=「왕위전」과 같은 기보는 「타이틀」전에 대한 두 분의 관심은 어느 정도입니까.

<재미 있는 기보문장>
김=특히 「왕위전」의 기보는 빼놓지 않고 읽고있습니다. 금년도 「왕위전」도 전5번승부는 「타이틀」을 차지한 서봉수 4단이 국내에서 수업한 유일한 「타이틀」 보유자라는 점에서 매우 흐뭇했습니다. 중앙일보·동양방송을 통해 각광을 받은 기사로는 조훈현 6단도 있지 않습니까.
한=「왕위전」 관전기는 상당히 인기있는 것 같습니다. 어휘나 문장이 재미있게 표현됐을 때 흥미를 더욱 돋워주더군요. 바둑을 두다가 새로운 기보를 읽다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해요.
사회=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 기전의 서열이 정해져 있읍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도 이번 「왕위전」을 계기로 「왕위전」을 「랭킹」1위로 하는 서열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이 서열은 물론 각 기전의 주관을 맡고있는 대한기원이 공식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김=우리 나라 바둑도 서열을 정해야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한=각 기전에 대한 바둑 「펜」들의 관심이 많이 달라지겠군요.
조=전문기사들도 대국자세가 훨씬 진지해질 것 같습니다.
사회=우리 나라 바둑발전을 위해서는 물론 전문기사들의 진지한 자세가 전제돼야겠지만 무엇보다 김·한 두분선생님 같은 「팬」들의 적극적인 성원이 필요합니다.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참석자>
조남철(대한기원부이사장·8단)
김용제(이대교수·법박·아마 3단)
한운사(작가·아마 초단)
김수영(왕위전 기보담당·5단·사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