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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암환자에 잘못된 희망 줄까 겁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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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작가 복거일(68·사진)씨의 간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암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가 화제다. 2년 반 전 간암 진단을 받은 뒤 그는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치료 대신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말기 간암으로 투병하는 주인공을 내세운 자전적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최근 출간했다. <중앙일보 3월 28일자 25면>
그를 29일과 3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암 환자가 치료를 안 받아도 되는 건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 지시를 받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전문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아서 치료하는 게 기본이다.”

 - 그런데도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그걸 앎에도 작가라는 직업과 과제의 특수성 때문에 그 과정을 안 밟은 거다. 의사가 내 삶을 컨트롤하게 되면 내 일을 못하지 않는가. 개인적 선택이었다. 장편소설은 기력이 약하면 쓸 수 없다. 치료와 글쓰기가 양립이 안 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했다. 대하소설 등 못 쓴 작품들을 쓰고 독자에게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건강상태는 어떤가.

 “생활하는 데 별 지장 없다. (통증은) 가끔 둔중한 느낌이 오는데 견딜 만하다. 하루 평균 5~6시간은 꼬박 글을 쓴다. 안식구가 해 주는 음식은 뭐든 잘 먹는다. 부족하면 몸에서 당기는 거니까 먹고 싶은 대로 먹는다. 술 마시러 오라는 데도 많다. 묘한 게, 싫어하는 배갈 같은 게 당긴다.”

 -간암 진단은 어떻게 받았나.

 “다른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영상을 두 번 찍었다. 한 번은 X선이었고, 다른 한 번은 CT(컴퓨터단층촬영)였는지 MRI(자기공명영상촬영)였는지 모르겠다. 전문 의사가 간암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래서 조직 검사까지는 안 했다.”

 - 그래도 치료를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성공하거나 빨리 실패하거나(실패함으로써 생존기간을 단축한다는 의미) 둘 중 하나 아니겠나. 고통이나 비용도 많이 들고.”

 -오진일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 없나.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암 덩어리가 보였고, 횡격막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만약 오진이라면 나로서는 행운이다.”

 -간암 몇 기인가.

 “전이가 되면 말기라고 하고 터미널 케이스(terminal case·말기 증세)라고 한다.”

 -자연치유 가능성은 없나.

 “자연치유가 어떻게 되느냐. (암의) 진전이 늦춰지거나 그러는 거겠지….”

 -환자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암 환자들이 신비주의 관점에서 자연치유 요법을 따를 경우 내가 나서서 ‘그런 사례는 단연코 아니다’고 말하겠다. 질병은 내 개인적인 일이다. 작품이나 작가는 공적인 영역이다. 작가라는 건 이런 경우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 ‘폴스 호프(false hope·잘못된 희망)’를 줄까 걱정된다.”

 이에 대해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간암은 오진 가능성이 큰 암”이라고 말했다. 그는 “간암은 혈액 검사와 초음파·CT 등 영상자료로 일단 진단하는데, 혈액 검사 수치는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 환자에게서도 높게 나타나고 영상자료에서 간암은 간경화·간경변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며 “조직검사를 해야만 간암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문석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암은 임상적으로 진단하기 때문에 조직 검사를 한 뒤 간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 말기 환자가 치료받지 않고 생존하는 극히 예외적인 일도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도 “조직 검사 결과까지 간암으로 확진됐는데 나중에 보니 암 덩어리가 사라진 예도 드물지만 있다”고 했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간암이 원격전이(암세포가 발생 부위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부위에 퍼진 상태)된 단계에서 5년 생존율은 3%였다. 말기 환자가 표적치료제 치료를 받지 않으면 4.2개월, 치료 받으면 6.5개월 생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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