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은 9명. 3년6개월간 만들거나 현실에 맞게 고친 조례는 7건’.
전남 완도군의회 성적표다. 현직 군의원들 임기가 시작된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조례 제정·개정 실적이 이렇다. 1인당 연 평균 0.2건꼴이다. 전국 227개 지자체 가운데 경남 남해군(0.1건) 다음으로 저조하다. 그나마 7건 중 2건은 자신들이 받는 ‘의정비’를 올린 내용이다. 2010년 월 15만원, 2011년에 다시 3만5000원 인상하면서 관련 조례를 고쳤다. 나머지도 법이 바뀜에 따라 하부 규정인 조례를 고쳐야 했던 ‘당연 개정’이 대부분이었다.
주민들의 삶을 바꿔 놓을 ‘생활 조례’ 마련은 뒷전이고, 자신들 이익과 관련되면 후다닥 고치고. 대한민국 기초의회의 민낯이 이렇다. 의원들 스스로도 “일 않는다”는 지적에 이의가 별로 없다. 전남 지역 A군의원(옛 민주당)은 “농촌에서는 조례 만드는 것보다 농산물 관련 시위 현장에서 사진 찍고 오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례는 만들어도 아는 이가 없으니 그보다는 주민들 편드는 현장에 얼굴 내미는 게 다음 번 당선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이럴 바엔 기초의회 없애는 게 낫다”고 하는 시의원도 있다. 영남 지역 B시의원(무소속)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계산해보자. 여기는 1인당 의정비가 연간 3600만원이다. 회기가 90일이니 하루 일당이 40만원인 셈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회기에만 일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주민들 만나 개선할 게 뭔지 살핀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건 일부 부지런한 의원들 얘기다. 대다수는 그저 회기에 얼굴 내미는 정도다. 그나마 회기 90일 가운데 20일가량은 토요일과 공휴일이다. 그렇게 따지면 하루 일당이 50만원이 넘는다. ‘귀족 일당’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나도 의정비 받을 때 계면쩍다. 기초의회 없애고 대신 주민 얘기에 귀 기울이는 민원부서를 확충하는 게 나을 수 있다.”
물론 발로 뛰면서 주민 생활을 바꿔놓는 기초의회도 있다. 대구 동구의회는 2012년 조례를 만들어 무료 법률·세무 상담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600여 명이 이용했다. 배연숙(60)씨는 “집을 팔면 세금이 얼마나 나올지 궁금했는데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며 “정말 유용한 제도”라고 말했다.
충남 서산시는 지난해 10월 어린이집·유치원·학원 차량 운전기사가 경찰에서 안전교육을 받도록 권고하는 조례를 마련했다. 학부모들의 차량 사고 걱정을 덜어주려는 노력이다.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안전교육을 마치면 어린이들이 차에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접이식 발판을 달아주는 ‘당근’을 제시했다.
그러나 주민을 위해 열심히 뛰는 의회는 많지 않다. 조례 제정 실적이 1인당 연평균 0.8건이란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의정비를 많이 받는다고 실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의정비가 4950만원으로 전국 최고인 서울 강남구의회는 1인 평균 연간 조례 제·개정이 0.4건이었다. 전국 평균의 절반이다. 전공석(63·새누리당) 강남구의장은 “아파트 재건축이나 복지시설 보수 같은 민원 해결에 집중하다 보니 조례 만들기에는 소홀했다”고 말했다.
기초의원들은 “조례 제정만으로 기초의원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방 소통령’이라 불리는 막강한 시장·군수·구청장을 얼마나 견제하느냐 역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충청 지역 C시의원(48)은 “다음에 또 당선되려면 출마 지역에 쓸 예산을 기초단체장으로부터 배정받아야 한다”며 “이런 점 때문에 단체장이 하는 일을 견제하기보다 눈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제주대 양영철(59·자치행정학) 교수는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조례 등을 평가해 실적이 좋은 의원에게 보너스 의정비를 주는 식으로 기초의원들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별취재팀=장대석·황선윤·홍권삼·김방현·신진호·최모란·윤호진·안효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