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금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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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기가 좋아질수록 돈을 풀라는 압력은 거세어진다. 경기가 나쁠 땐 긴축이 가능하지만 경기상승기엔 통화팽창에 밀리고 만다. 75년에 사상처음으로 재정안정계획의 통화목표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워낙 경기가 나빴던 덕을 본 것이다. 금년은 연초부터 돈 때문에 아우성이다.
각 은행들이 대출을 너무 많이 하여 지준 부족을 일으켰다. 정부의 엄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은행이 대출을 많이 한 것은 경기상승기의 왕성한 자금수요 때문이다. 기업과 직접 거래를 하고있는 은행은 기업의 대출요구를 딱 끊어 거절하기가 어렵다. 기업활동이 그대로 은행에 전도되어 어쩔 수 없이 돈줄이 풀리는 것이다.
오랜 불경기 속에서 엎드려 있던 기업들이 경기 상승의 조짐이 보이자 서서히 시설확장 등에도 손을 대려하고 있다. 25일로 마감한 3백50억원의 상반기설비금융신청에도 약 4∼5배의 경합을 보이고 있다한다. 기업들이 긴 불황에 워낙 혼이 났기 때문에 경기회복에 앞서 미리 대폭적인 시설투자를 하기를 꺼리지만 수출 신용장내도의 호조로 경기 회복감이 높아지자 서둘러 시설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금년 들어 30∼40%나 늘어난 수출수주가 섬유 등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순화하려면 어차피 증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수출의 증가는 하청공장에도 일거리를 주기 때문에 중소기업자금의 수요도 왕성하다.
금년 들어 은행대출이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구정을 낀 영향도 있지만 지난1월중에 국내여신은 무려 1천9억원이 늘었다.
수출 신용장내도의 증가를 반영하여 수출금융이 특히 많이 나간다.
수출금융은 신용장만 오면 돈이 자동적으로 나가므로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다. 일정한 여신한도 중에서 수출금융이 많이 나가면 다른 대출을 줄여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우니 자연 은행은 지준 부족 사태를 일으키는 것이다. 작년엔 대출이 매우 부진하던 주택금융도 금년 들어선 상당히 활기를 띠어 2윌20일까지 약30억원이 나갔다. 이러한 전반적 자금 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재정안정계획에서 잡아놓은 여신한도는 비현실적으로「타이트」하다. 금년의 국내여신목표증가율은 26%, 통화증가율은 20%다. 경기가 그토록 나빴던 75년에도 국내여신이 31.9%, 통화가 25%늘었다.
74년엔 국내여신 53.8%, 통화29.5%의 증가를 기록했다.
76년에 분명히 경기가 좋아진다면서 돈은 작년보다 덜 풀 계획을 하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정책목표의 비현실성에서 온다. 즉 75년의 성장실적이 7.4%인데 76년 목표성장률을 7%로 잡아 놓았으니 통화·여신증가율도 낮을 수밖에 없다.
금년 성장율을 7%로잡고 이에맞춰 재정안정계획을 짠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웃기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정책기조가 고통스러운 총 수요관리를통해 높아지려는 성장율을 낮출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차라리 「인플레」가 되더라도 고도성장이 낫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인플레」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강력한 금융긴축을 하겠다는 굳은 결의가 76년 재정안정계획속에 나타나고 있지만 아무래도 실현 불가능한 허망한 목표같다.
지속성장을 위해선 안정기조의 견지가 바탕이되고 이를 위해선 통화안정이 급선무이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은 올라가게 내버려두고 통화만 억제한다는 것은 부작용이 나기 쉽다. 안정성장을 위해선 금융뿐만 아니라 재정·수출·산업·외자정책 등이 모두 보조를 같이해야한다. 그런데도 다른 정책들은 고도성장을 지향하면서 금융만 누르려니 부작용이 나는 것이다. 정부재정부터 팽창일변도로 치닫고 있고 재정흑자가나면 그 많은 한은차입은 안 갚고 으례 추경을 짠다.
정부는 팽창을 해도 민간은 긴축을 하라는 논리를 금년에도 강요하고 있다 .금융이 경제현실에 유리된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연초부터 돈 부족의 아우성이 이토록 심한 것이다. 통화 회전율도 빨라지고 사채금리도 올라가고 있다.
금년은 기업은 돈 갈증을 무척 겪어야 할 것이고 재무부는 터지려는 통화방어선을 사수키 위해 악전고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화는 어차피 터질 것이다. <최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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