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추천제 놓고 충돌 3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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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일하오 서울 신문 회관 강당에서 열린 한국 문인 협회 제15차 정기 총회는 이날 총회에서 다시금 전격 제출된 조연현 이사장의 사표와 문덕수 부이사장의 사표 처리 문제, 그리고 지난 2일 이사회를 통과한 정관 개정의 합법성 여부를 놓고 3시간 이상 격론을 벌였으나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한 채 폐회되고 말았다.
총 회원 1천2백여명 중 2백96명 (48명은 위임장 제출)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총회에서 조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정관 개정은 유효하지만 연구해 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공표를 보류한다』고 말하고 사퇴 의사를 다시금 천명. 의장 권한을 이동주·문덕수·김요섭씨 등 3명의 부이사장에 위임한다면서 퇴장했다.
조 이사장의 이 같은 태도는 개정 정관의 위법성을 끝까지 추궁하려던 조씨 반대 세력을 당황케 했다. 지난 2일의 이사회 직후 천승세 (소설) 권일송 (시) 이근배 (시조) 신동한 (평론) 김영목 (번역)씨 등 각 분파 위원장과 함께 공개 성명을 발표, 개정 정관의 위법성을 주장한바 있는 문덕수 부이사장은 『투표는 모든 회원의 기본권이므로 이사장단을 추대제로 한다는 개정 정관은 악법이다』면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다시 퇴장.
이때부터 회의장은 고함과 야유·욕설 속에서 무질서하게 진행되었다. 이근배·신세훈·권일송씨 등은 『개정 정관이 악법일 뿐만 아니라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도 29대 9로 가결시킨 것은 무효가 아나냐』고 반문하고 『총회에서 조 이사장과 문 부이사장의 사무 처리 문제, 그리고 개정 정관의 하자 여부를 따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번갈아 의장직을 맡은 이동주·김요섭 두 부이사장은 『개정 정관 문제를 다루는 것은 좋으나 조·문 양씨의 사퇴 문제는 이사회에 넘기자』고 호소,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이날 총회에서는 연 40여명의 회원들이 발언권을 얻어 등단했으나 핵심 있는 발언은 찾아 보기 힘들었고 「마이크」 쟁탈전을 벌이는 추태까지 연출했다. 논쟁의 초점은 75년1월12일 문협 제14차 정기 총회 때 『선거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이사장단을 추대제로 하는 것이 어떠냐』는 조 이사장의 제의가 총회의 인준을 얻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 오학영 (문협 사무국장) 성춘복 김시철씨 등은 『그때 박수 친 사람이 3분의 2는 넘었다』는 주장이고 조씨 반대 세력들은 『총회 막바지의 혼란 속에서 정확히 3분의 2 이상이 찬의를 표했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인데 양측의 주장에 객관성이 없는 것이고 보면 이날의 총회는 처음부터 아무런 뜻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2가지 문제를 총회에서 다룰 것이냐의 여부를 놓고 표 대결을 벌이려 했으나 정확한 인원 점검도 않고 「1백80명 밖에 안된다』는 이유로 폐회되고 말았다.
이날 총회는 문단의 주도권 쟁탈이 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75년 총회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김동리씨 세력이 침잠한 현상을 보인 반면 조연현씨 계열이었던 문덕수씨가 상당한 독자적 세력을 확보했음을 보여 주었고 「문단 정화」라는 명분을 앞세운 일부 30대 젊은 문인의 단합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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