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질서 확립과 경찰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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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시는 인류의 가래침』이라는 경구가 암시하듯이 깨끗하고 명랑한 생활 환경을 꾸미려는 시민 모두의 노력이 계속되지 않으면 도시는 불가피하게 더럽고 무질서해 진다. 우리 나라 도시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이런 뜻에서 치안 본부가 이번에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거리 질서 확립 운동을 강력히 펴나가겠다는데 대해 큰 성과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실상, 서울을 비롯한 우리 나라 대도시가 현대 도시로서 부족하고 결여된 것은 비단 시설의 불비만이 아니라 그 보다는 오히려 시민들의 질서 감각과 생활 철학의 결여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시설이나 공공 「서비스」 면에서의 부족은 투자만 하면 곧 그 성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시민들의 질서관과 공중 도덕관을 높이는 일은 별다른 투자 없이 시민을 스스로의 웬만한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인데도 그것이 재대로 안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기야 7백만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들 끊는 서울 거리가 면경알 같이 깨끗하다거나 「모델·하우스」의 전시처럼 질서 정연 할 수만은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들이 다른 나라 도시들에 비해 너무 지저분하고 소란스럽고 어지럽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이 질서 저해 단속 대상으로 술 주정, 침 뱉기, 연탄재·휴지·담배꽁초 버리기, 방뇨 행위, 미성년자 탈선 행위, 장발 등 무려 16가지를 들고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겠으며, 어느 정도 공감이 안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 질서 정화 운동에 경제력이 동원되는데에는 그것대로 또한 문제가 없지 않을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자칫 인권을 침해하거나 선량하고 무력한 시민들의 생활을 괴롭히는 등 부작용을 빚을 우려가 없지도 않다. 종래의 예를 보더라도 장발 단속이다, 탈선 미성년자 적발이다 하여 적지 않은 경찰관들이 영업 장소인 음식점·다방들에 들어가 폭언을 함부로 하고, 마구잡이로 젊은이들을 괴롭히는 등 할당된 건수 채우기와 실적을 올리기에 과잉 단속을 벌임으로써 민원을 산, 사례가 적지 않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더군다나 이번 질서 저해 사범 단속에 앞서 서울 시경은 산하 전 경관의 백지 사표를 받아 놓고 강력한 단속을 지시했다는 것이니 그 자체가 인권 침해와 직권 남용 등의 우려를 짙게 하는 것이다. 더우기 위반자는 이전과는 달리 전원 형사 입건하거나 즉심에 돌려 29일까지의 구류 처분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 같은 과잉 단속이 부작용 없이 수행될 것인지 누가 보아도 불안감을 금할 수 없지 않는가.
본래 강력한 행정력에 의한 단속과 엄한 처벌의 위혁 효과에 의해 시민의 오래된 생활 습성과 타성을 단 시일 내에 바로 잡겠다는 것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역효과를 내기 쉬운 법이다. 잘못하면 무리가 생기고 물의를 빚게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쥐를 잡으려다 독 전체를 깨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할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거리 질서 사범 단속에 치중한 나머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 본래의 임무 수행에 만의 하나라도 지장을 가져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경찰력 부족으로 도둑을 비롯한 각종 범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더러, 많은 잔학 범죄가 영구 미제 사건화하고 있는 형편에서 거리 질서 확보에 많은 경찰력이 동원된다는 것은 반드시 현명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기서 거듭 당부하고 싶은 말은 모진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 행인의 옷을 벗겼다는 슬기를 교훈 삼아 주었으면 한다. 모든 행정력의 행사는 네모난 그릇에 담긴 된장을 둥근 바가지로 퍼내듯이 해야만 원만하고 조용히 말썽 없는 가운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시민들도 깊이 반성하여 공중 도덕심과 문화 시민의 긍지를 살려 생활 주변을 자율적으로 정화하는 일에 나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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