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김윤식(문학평론가) 홍성원(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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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신춘문예 작품들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전체적인 경향을 이야기한다면 근년에 이르러 신춘문예작품들은 전보다 주제도 덜 뚜렷하고 가벼운 「터치」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바다와 나비병』(동아) 『하얀 역류』(한국)는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어두운 주제를 가벼운「터치」로 다룬게 뭔가 어색하고 안정되지 못한 흠이 있읍니다. 『돌을 던지는 여자』(중앙)는 예외입니다만 한참 유행하던 <죽음>이 자취를 감춘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구요.
홍=감각적인 「터치」라는 점에서 『돌을 던지는 여자』도 예외는 아니지요. 하지만 이 작품엔 신인다운 신선함이 있읍니다.
표현의 재치도 번득이구요. 가장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으로는 『어떤 신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신춘문예의 성격에 맞는 신인작품으로 간주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김=1월에 발표된 소설을 읽고 몇 가지 느낀 것이 있는데 첫째는 소설의 길이가 짧아지고 있다는 것, 둘째는 한동안침묵을 지키던 원로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작가들의 소재선택이 확대되고 있으나 그에 따른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등입니다. 소설의 길이가 짧아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소설의 길이와 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겠지요. 소재에 따라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지 않겠읍니까. 독자가 짧은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문제는 역시 작가 쪽의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김=독자나 편집자의 요구와 관계 없이 작가 스스로 짧은 소설만 쓴다면 그것도 하나의 유행현상으로 볼 수 있겠지요. 작년 말부터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안수길·황순원·최정희·박화성씨 등 원로작가들의 작품도 짧지 않습니까.
홍=이분들의 최근 소설을 보면 대개 자기류의 알맞은 주제를 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은 <문제>만 쫓아다니다 보니까 시대마다 작품경향이 달라지게 되는 일반적인 흐름과 비교할 때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소재선택의 문제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소재확대의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백시종의『배가 산으로』 이병주의『여소록』(이장 현대문학)송영의 『신년우화』(소세문예)등을 들 수 있겠는데 이들 작품들이 지역적(배가 산으로) 사상적(여소록) 혹은 일상적(신년우화)인 소재의 확대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을 끌지만 소재확대의 어떤 한계 같은 것을 보여준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홍=우리소설이 늘 「스케일」이 크지 못하다는 소릴 많이 듣는데 그 까닭은 정치적 혹은 지리적 제약 때문이 아닌가 해요. 오래 전 우리 나라에선 처음으로 해양소설을 시도한 바 있는데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동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간접체험도 체험이기는 합니다만…. 『배가 산으로』 역시 바다이야기를 다룬 것인데 역시 우리가 갖는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지 못한 것 같아요.
김=20대의 길들여진 일상적 느낌을 담은 『신년우화』나 30년만에 만난 친구들의 역사해석을 소설화한 『여사록』도 주제의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어요.
홍=자의식소설밖에 나올 수 없는 이같은 상황은 우리작가들이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겠지요. 중견작가들의 작품도 많았는데 어떻게 보셨는지요.
김=하근찬의『전차구경』(문학사상) 이정호의 『강 노인의 웃음』 이청준의 『사랑의 목걸이』(이상 한국문학)등을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모두 정석대로 쓴 정통적인 유형의 소설들이었습니다. 『전차구경』은 작가자신의 생각의 깊이를 따르지 못한 듯 안이한 느낌을 주었으며 『강 노인의 웃음』은 연륜의 안정감이 포근하게 전달되더군요. 『사랑의 목걸이』는 이 작가특유의 풍자적 수법이 완숙하게 정리된 작품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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