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복지모델은 리모델링 중] 下. 스웨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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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연금(최종급여의 60~70%)으로 넉넉한 노후생활을 하는 스웨덴 노인들도 복지축소의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 사진은 스톡홀름 시립문화회관에서 체스를 두며 여가를 즐기고 있는 노인들.

중앙일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기획해 기자와 교수로 특별취재팀을 구성, 지난달 6~17일 독일과 스웨덴을 돌며 유럽의 복지모델을 살펴본 결과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는 교훈을 거듭 확인했다. 명품도 몸에 맞아야 어울리듯 유럽식 복지는 화려하고 부러운 옷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맞춰 입을 만큼 성장력을 키우지 못했고 투명한 세정(稅政)과 사회적 신뢰 및 합의도 쌓지 못했다는 한계를 느꼈다.

"2003년 한 해에 스웨덴 노동자들이 아프다며 병가를 쓴 날이 모두 1억일이다. 1998년 5000만일이던 것이 5년 만에 배로 늘었다. 1인당 한 달 가까이 쓴 셈이다."(스웨덴 사회보험청 한스 예르트스트란드 법률고문)

지난달 16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본지 특별취재팀과 인터뷰한 예르트스트란드 고문은 "꾀병을 포함해 근로의욕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며 "1억일 병가 쇼크가 스웨덴 복지 모델의 수정을 재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가 여기에 부담하는 비용만 한 해 1000억 스웨덴크로네(약 15조원)에 달한다.

스웨덴이 복지모델 수정에 몰두하고 있다.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스웨덴 총리실 얀스 라르손 정책담당 수석보좌관은 "스웨덴도 이젠 경제를 외면한 채 복지에 역점을 두는 정책을 더 이상 고집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노인도 일을 해야 한다. 노인들이 과다한 복지혜택만을 기대하면서 살 수 없게 됐다. 경제가 살아야 복지도 있다는 점을 다같이 깨달았기 때문이다."(스웨덴 미래연구소 토마스 린드 박사)

기업가 정신의 감퇴도 걱정하고 있다. 스톡홀름 경제대학 망누스 헨렉손 교수는 "스웨덴을 먹여 살리는 50대 기업 중 1970년대 이후 설립된 회사가 한 군데도 없다"고 말했다.

◆ 실업자 늘어 골치=스웨덴이 복지제도에 손을 대려는 것은 실업자에게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과 부담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스웨덴 실업률이 지난 2월 현재 5. 7%라고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정부 보조금을 더 많이 받아 실제로는 세금을 못 내는 계층까지 포함하면 10%를 넘는다."(헨렉손 교수)

스웨덴고용주연맹(SAF)의 앙네스 팔린시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실업증가는 복지국가의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일하면 더 주는 정책="많은 노동자가 아프다는 이유로 일을 하지 않으려 든다. 복지 시스템이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게 문제다. 노동자가 일터로 다시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학교교육과 직업교육도 강화해야 한다."(사회보험청 예르트스트란드 고문)

노동자들의 병가는 엄격히 규제할 방침이다. 각 회사에 전문의사 고용을 의무화해 병가를 철저히 관리하려는 것이다. 일하는 여성에게 파격적인 복지혜택을 주는 정책도 선보이고 있다. 직장 여성이 애를 낳으면 국가에서 유급휴가를 450일 동안 주는 등 혜택을 늘리고 있다. 정영조 스웨덴 주재 한국대사는 "우리가 이 나라 복지모델을 따르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이곳 사람들이 복지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은 소득의 절반 이상을 국가에 세금으로 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톡홀름=특별취재팀

*** 스웨덴 전문가들이 한국에 주는 조언

"스웨덴 복지모델 유지에는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든다. 세금을 많이 내야 하고 협력.연대.윤리의식을 갖춰야 한다. 스웨덴 모델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라르손 총리실 정책수석보좌관)

"스웨덴 자료는 몽땅 복사해 가되 제도를 그대로 복사하지는 말라.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이 다르지 않나."(앙네스 팔린시 고용주연맹 이코노미스트)

"한국이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여성이 마음 편히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육아.교육.의료 제도다."(헨렉손 스톡홀름 경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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