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열·혹한 「이란」사막을 가다-이근량 통신원 한국인 운전 수송대 동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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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테헤란」에서 「페르샤」만 입구의 「반다르아바스」에 이르는 1천8백㎞의 「이란」사막 종단로는 한국인 운전사들이 『죽음의 「코스」라고 이름지어 놓은 「이란」에서도 가장 험난하고 가장 긴 사막의 길이다. 「오아시스」의 양떼를 바라보며 「액셀레이터」를 밟는 동안만은 사막의 정취라도 느낄 수 있지만 밤낮의 기온 차가 무려 45도나 되는 악천후에 1㎞나 되는 위험천만한 벼랑길이 곳곳에 있어 3개회사 8백여 한국 운전사들은 월4백「달러」(20만원)를 송금한다는 즐거움보다는 언제나 공포와 피로가 앞서있다. 「이란·붐」에 따른 기술자의 진출, 특히 운전사의 진출에는 이상이 없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3박4일간 대형 「트레일러」의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끝없는 사막을 종단하면서 운전사의 생활·사막 풍경, 그리고 「페르샤」만의 살인적인 무더위를 체험해 보았다.
감독으로부터 처음 소개받은 「이란·탱커」3백46호 운전사 최동옥씨(35)는 『이 차를 타고 「반다르아바스」까지 간다구요?』라고 반문하면서 좀더 좋은 차를 타고 단거리 「코스」를 택하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충고다.

<버너에 감자찌개 끓여>
그러나 여행 목적을 차분히 설명해주자 『그러면 모든 것은 운전사에게 맡겨주시죠』라고 말하더니 바로 차를 몰아 「테헤란」시가지를 벗어났다. 「터미널」을 떠난지 1시간쯤 지났을까. 시계는 누런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망망대해와도 같은 모래 바다-. 사방을 살펴도 모래뿐 나무는 물론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 흡사 유황더미와 같은 누런 빛깔뿐이다. 하늘도 누렇고 태양마저 빛의 위력을 잃은 듯 했다.
사막의 길은 시작도 끝도 없이 그냥 「아스팔트」위에 한점 「트레일러」가 서 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모른다. 「이란·탱커」3백46호는 서독 「벤츠」사 제품 22t 대형 「트레일러」. 운전석 옆에 2개의 좌석이 붙어있지만 침구와 취사도구를 가득 실었기 때문에 기자와 단2명뿐인 운전석은 초만원이다. 운전석이 그대로 침실과 식당을 겸하는 셈이다.
「테헤란」 출발 후 3시간, 양고기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어느 간이식당에 이르자 벌써 그곳에는 먼저 온 한국 운전사들이 식사에 한창이다. 원맥이며 철근 등을 싣고 「테헤란」으로 가거나 아니면 빈차로 「반다르아바스」로 달리는 차량들이 20여대. 그늘아래 옹기종기 둘러앉아 「버너」위에 찌개를 끓이고 또 몇 명은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씻고 있었다.
모두가 검붉게 그을은 얼굴들. 식사래야 밥에다 감자찌개가 고작인데 작업량은 엄청나 모두가 지친 표정이다. 움막처럼 생긴 양고기집에 들어서자마자 양구이를 씹던 몇명의 운전사가 다짜고짜 『봉급 나왔소?』하고 물어온다.
「이란·탱커」의 운전사에게는 무엇보다도 봉급자체가 문제인 것 같았다. 봉급수령 예정자인 1, 2진 2백명 가운데 불과 60여명만이 11월 급료를 지난 15일에야 받았고 나머지는 월간 주행거리가 8천㎞미달이란 이유로 지불을 보류 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회사측에서는 월간주행거리를 1만2천㎞로 계약했기 때문에 8천㎞이하는 어쩔 수 없다는 반면, 운전사들은 한번 짐을 싣고 내리는데 3일간을 소비해야 하니 6백25「달러」(31만2천5백원)의 월급을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다.

<봉급 지급조건 개선돼야>
이 문제는 현지 대사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좋은 방향으로 타결될 전망이나 무엇인가 근본부터 잘못이 있는 것 같다.인력진출의 초기 현상이라 해도 이곳에서 받고있는 우리 기술자의 대우는 월남에서와는 엄청난 차이를 실감케 한다.
숙소를 찾을 길이 없어 운전석에 앉아 빵을 씹으니 한기가 한꺼번에 온몸에 스며든다. 영하 15도쯤이나 될까, 낮엔 기온이 30도 안팎이니 밤과 낮의 기온 차가 무려 45도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추위와 싸우다 새벽4시쯤 「엔진」을 시동시켜 그대로 남행을 계속했다. 빵 한 조각으로 때운 저녁이었기 때문에 허기마저 엄습해 오지만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는 아무생각도 없다.
얼마나 달렸을까. 남행하던 「이란·탱커」한대가 되돌아오는가 싶더니 우리 차를 세우고 뒤따라오던 차를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마도 새로 온 운전사가 고참 운전사를 뒤쫓다가 길을 잃은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첫번째 운행이라 해도 우리 운전사들은 누구나 차를 배당 받으면 그대로 목적지까지 안내원 없이 달려야한다. 지도는커녕 도로표지마저 「페르샤」어로만 되어있는 4천릿길을 손짓 발짓으로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오르막길 50분, 내리막길에서 30분이나 달려야되는 「나이네」계곡을 빠져 제법 큼직한 「오아시스」에 이른다. 자그마한 주유소가 하나, 「오린지」장수들이 두서너명, 울창한 야자수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30여 운전사의 아침식사 광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새로 온 3진과 4진들은 아직 고춧가루와 맛소금을 금싸라기처럼 휴대하고 다니나 도착 후 2개월이 넘는 1진과 2진은 소금만으로 살아간다.
아침을 마친 후의 남행 길엔 엄청난 졸음이 찾아왔다.

<과로·졸음 쫓으려 노래>
운전석에선 갑작스레 노래 가락이 튀어나왔다. 흥겨워서가 아닌 졸음을 쫓기 위한 노래 소리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해가 지고 한동안 별빛 속에 거의 1시간이나 헤맨 끝에 마음씨 좋은 양고기집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누런 사막 속의 토담집, 얼핏보아서는 작은 언덕처럼 보일 만큼 온통 흙만으로 된 집들이지만 벽의 두께만은 더위나 추위를 한꺼번에 막기 위해 50㎝정도나 되었다.
비록 부엌바닥에서 하루 저녁을 지냈을 망정 사막 3일간에 가장 흐뭇한 하룻밤이었다.
연일의 과로에 지친 듯 ,운전사는 갑자기 길을 가다말고 차를 세워 「핸들」에 얼굴을 파묻곤 했다.
이국에서의 외화 획득이란 이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도 하기 힘든 사막의 장거리 여행을 매일같이 해야하는 이들의 고생은 정말보지 못하고는 짐작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해에 탄 검은 얼굴에 「선글라스 」를 하나씩 낀 우리 운전사들은 땀흘려 돈을 벌어서 고국에 간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로들 권하는 신탄진 한 개비에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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