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출신 총리 제1호 탄생-최규하 내각이 갖는 정치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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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설>
「김종필 내각」의 퇴진과 「최규하 내각」의 등장은 단순한 인물교체의 차원을 넘은 정국의 방향전환과 정책결정의 구조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우선 혁명주체→공화당의장→외유→국무총리 등 풍운의 「코스」를 거친 정치인인 김 전 총리와 대학교수→직업외교관→외무장관→대통령보좌관이란 직업관료의 길을 걸어온 최신임 총리서리는 극단으로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실상 김 전 총리는 제3공화국 이래의 가장 강력한 총리로서, 명실상부한 역할을 맡았었다. 그의 재임 중 상당한 기간행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은 일단 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로 올라가는 과정을 밟았었다.
(김현옥 내무시절 산림녹화 10개년 계획 성안 같은 예외가 간혹 있었긴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도 행정의 상당한 부분을 사실상 내각에 위임해 실질적인 재량의 폭을 주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국회·여당의 문제에까지 김 전 총리는 영향력을 행사, 흔히 총리공관에서 정부·여당연석회의를 주재했고, 어려운 대야협상의 최종 선을 조정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김 전 총리는 상당한 부분에 걸쳐 박 대통령의 대역을 해온 셈이며, 정부·여당의 「부심」으로서 기능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김 내각」은 「정치내각」의 성격을 다분히 지녔던 셈이다.
반면 신임 최 총리서리는 그의 경력이 말해주듯 실무가-행정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또 현재의 권력구조 내부에 있어 그가 지금껏 맡아온 역할·기능으로 보아 「최내각」은 「실무내각 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의 「김 내각」에 맡겨졌던 재량권도 「최 내각」에서는 그 일부가 다시 박 대통령의 친정으로 수렴되거나 아니면 최 총리 중심의 어떤 협의에서 행사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고위층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개각은 유신 제2기의 시작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3년간이 유신기반조성기간으로서 제1기에 해당한다면 어려운 기반조성작업은 강력한「김 내각」을 내세워 해냈고, 이제부턴 안정된 「정착내각」으로서 제2기의 유신과업을 추진한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최초의 관료출신 총리가 탄생한 것은 그만큼 관료의 성장이 있었다는 의미겠지만 내각의 성격도 「행정적」 「안정적」 일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 외교담당특별보좌관으로서 그동안 주요 안보·외교문제에도 줄곧 참가해 왔고, 특히 석유위기이후 대 중동자원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역량을 발휘했다.
이번 개각에서 농수산부장관을 제외한 경제장관들이 모두자리를 지킨 것은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시사가 될 것 같다.
최 총리서리가 오직 외교분야에만 종사해왔다는 점에서 유임된 남덕우 부총리의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최 내각에 있어 외교·안보문제는 최 총리서리가, 경제문제는 남부총리가 각각 구심점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각에서 특히 눈에 두드러지는 점은 청와대「팀」의 내각 진출. 우선 최 총리서리 외에도 김성진 대변인의 문공, 박원근 안보담당특별보좌관의 체신장관으로의 진출이 그것이다.
또 지역별로는 경북출신이 늘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박동진 외무·김치열 내무· 신현호 보사가 경북출신이며 유임된 김재규 건설·서종철 국방도 이곳이 고향이다.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이선중씨도 경북이 고향.
이번 개각의 다른 특징은 의원겸직장관의 전원 교체. 고재필 보사·장승태 체신 및 이병희제1·구태회 제2무임소장관 등 4명의겸직장관이 모두 물러가고 2명의공화당의원과 1명의 유정회 의원이 장관을 겸직하게 됐다.
제1무임 소로 그동안 한·일 의원연맹을 주도해 온 이병희 의원은 장관 자리를 떠난 후에도 한·일 의원외교는 여전히 맡아할 것으로 보인다.
김치열 검찰총장의 내무장관으로의 전임은 서정쇄신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라는 고위층의 뜻이 담긴 인사라는 평도 있다.
그동안 내무부소관업무중 경찰관의 비위, 강력범사건의 접종 등에서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 개각으로 외무부장관은 김용식·최규하·김동조·박동진 장관 등으로 직업외교관출신이 맡는다는 관례가 이어졌으며, 문공부장관은 신범식·윤주영·김성진씨 등 역대 청와대 대변인이 발탁되는 관례가 세워진 셈.
이번 내각의 개편이 단순한 「대폭개각」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내각」에서 「실무내각」으로의 개편을 뜻하는 것인 이상 앞으로의 정국방향도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송진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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