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의 압력수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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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파리」에서 개막된 빈·부국간의 국제경제협력회의는 제3세계의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발언권강화의 소산이라 하겠다.
74년4월의 「유엔」자원특별총회, 지난 9월의 「유엔」경제특별총회,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이번 회의는 모두 지난73년 석유무기화로 확인된 제3세계의 자기 힘에 대한 재인식에서 연유된 것이다. 제3세계의 새로운 자기인식은 어떤 의미에선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선진공업국 위주의 기존 세계경제 질서를 개혁하는 동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지금까지의 세계경제 구조는 다분히 선진 공업국에 유리하게 짜여진 것이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식민제국의 이익이 우선했던 식민 시대적 경제질서를 크게 탈피하지 못한게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질서를 개혁하여 제3세계가 국제경제에 기여한 정당한 몫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추세다. 그렇다고 선진공업국이 이를 선선히 인정하려할 턱도 없다.
이러한 남·북간의 이해를 둘러싸고 대체로 세 가지의 입장이 상정된다. 기존세계경제질서의 묵수와 세계경제질서의 혁명적 개혁, 그리고 국제 협력을 통한 점진적 개혁이다. 지금에 와선 선·후진국이 대체로 위에서 말한 세번째 방식, 다시 말해 국제협력을 통한 공존적 국제경제질서의 개편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개편이나 협력의 폭에는 아직도 단층이 크다. 이 단층을 대화를 통해 해소하기 위한 첫 단계 결실이 바로 이번의 「파리」국제 경제협력회의지만, 단층이 해소되지 않고 일방적 행동으로 발전 된 여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
빈·부국에는 모두 그 나름대로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자국의 의사를 강요하기 위한 수단이 있을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수단이 자제되지 않고 함부로 발동된다면 가공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빈·부국 어느 쪽에도 유리하지 못한 일이다. 이런 파멸적 사태를 피하기 위해선 1차적으로 지금까지 세계경제의 수혜자였던 부국들의 국제협력에 대한 보다 큰 기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더해 산유국 등 제3세계가 해야할 몫도 점점 커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제3세계가 서방공업국들에 경제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서방측재산의 몰수 등 6가지를 예거한 「헤럴드·튼리뷴」지의 보도는 관심을 끈다. 이 보도는 압력수단으로 서방측 재산몰수, 외채지불 거부, 국제통화체제에 대한 교란, 마약유출, 인위적인 자연의 오염, 서방공업국간의 마찰을 이용한 기묘한 역할을 들고 있다. 여기에 열거된 방법 중에는 실지로 있었던 일도 있을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는 모두 가능한 것들이다. 다만 그 모두가 이에 상응하는 보복이나 반작용이 따르는 것들이란 점이 문제다.
인도적으로 규탄되어야할 마약 유출이나 우선 자국에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가 클 자연의 오염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재산의 몰수나 외채지불거부 등은 개발에 필요한 외채조달 등 국제협력의 봉쇄를 각오해야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국제적으로 자본이동과 투자·교역을 위축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풍토를 조성할 위험이 크다.
다만 제3세계가 이같은 압력수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선진국이 좀더 정의조운 국제경제 질서로의 일보 후퇴를 촉진시키는 무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수단에 대한 과신이 자칫 국제경제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에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선 안되겠다. 바람직하고 가능한 세계경제 질서의 개편은 역시 선진부국의 국제경제 협력에 대한 더 큰 기여와 제3세계의 극단적 수단의 자제가 조화될 때에만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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