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천일야화」의 거리|번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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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쯤 되면 현대판 천일야화라고나 할까.
그것도 「오일·달러」가 가져다 준 부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거미줄처럼 널려 있는 거리에 이름이 없는 곳이 많고 또 건물에도 주소가 없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행정 수도인 「리야드」나 왕도인 「제다」마저 초현대식 도로망에 고층건물이 즐비하지만 거리 이름과 주소가 없어 여행자에겐 낙타를 타고 사막을 떠돌아다니던 그 옛날만큼이나 불편이 많다. 「사우디」 사람들에게 주소를 물으면 대개 『○○학교 정문 왼쪽』이나 『××회사로부터 동쪽으로 5백m지점』, 또 『공항으로 가다가 오른쪽에 보이는 마을』이라는 식으로 대답해 준다. 예를 들어 「리야드」에 지역 본부를 두고 있는 UN개발처(UNDP)의 주소는 『공항로 동쪽에 있는 장교 「클럽」뒤쪽』이다.
더욱 「제다」에 있는 미대사관 직원들의 주택은 『왕 「민스크」로부터 「소말리」와「벨기에」 대사관을 찾은 후 「함라」가를 돌아 「듄스·클럽」 동쪽에 있는 「레이턴」 자동차 공장 뒤편의 축구장 건너쪽』이라는 어마어마하게 길고도 알쏭달쏭한 주소를 자랑하고 있다.
이 같은 실정이니 현지 주민은 물론 외국의 여행자들 모두 큰 불편을 느낄 것도 당연한 일.
아예 「사우디」 사람들은 항상 주머니 속에 자기 집과 직장의 약도를 넣고 다니며 저녁 초대라도 받은 사람이면 낮에 「택시」를 몰아 상대방 집을 확인해 놓아야만 안심하고 초대 시간을 맞출 수가 있다.
자연 우편 사정도 최악의 상태일 수밖에 없다. 편지 봉투에 『○○골목에서 두 번째 집』하는 식에다 간략한 약도를 그려 넣어도 배달이 늦기 때문에 중류 이상의 가정은 아예 중앙 우체국에다 사서함을 확보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마을의 편지 봉투를 모아 중앙 우체국의 사서함에 집어넣는 것뿐이니 우편 배달부로서도 상팔자가 아닐 수 없다.
「제다」도 마찬가지지만 「리야드」는 40여개에 이르는 거리에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10여개에 불과, 현재 50만「달러」(2억5천만원)를 들여 거리의 작명에 한창 열을 내고 있는 중이다. 【테헤란=이근양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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