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효약 없는 미국의 「인플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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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경제가 재채기를 하면 「유럽」이나 일본 경제는 감기에 걸린다. 한국 경제는 폐렴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물가 추세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인플레」에 대한 재미 강문형 박사의 현지 진단을 소개한다. 강 박사는 경기중학(39년)과 보성전문상과(44년)를 졸업하고 도미, 미「네브래스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60년)를 받고 「콜로라도」 「알래스카」 「미주리」 주립대 교수 등을 거쳐 68년 이후「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교수로 있다. 전공은 금융이론 및 경제정책.
51년부터 67년까지 17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연평균 2%정도 올랐으며 가장 많이 오른 해가 3% 정도였다.
그러나 68년부터 물가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 68년엔 4%, 69년, 70년은 6%씩 올랐다.
연 2%정도의 안정 추세에 젖어 온 미국으로선 6%의 물가 상승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미국 정부는 71년 8월 임금·물가의 직접 통제를 실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물가를 직접 통제에 의해 안정시킨다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직접 통제의 부작용이 많으므로 임금·물가의 통제를 74년 4월 해제하고 말았다.
74년 4월 이후 75년 겨울에 이르기까지 물가 상승률은 연율 7.6∼12%에 이르고 있다. 76년부터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면 물가 상승은 더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악성 「인플레」는 앞으로 2∼3년 내엔 완전히 수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미국의 「인플레」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한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인플레」의 요인은 복합적인 것이다. 가장 먼저 50년 후반부터 계속되어 온 초과수요의 누적을 들 수 있다. 민간 소비 수요는 역사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여 왔다.
또 정부에서도 신사회 보장 정책·월남전 수행 등을 통해 막대한 재정 적자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재정 적자 등이 과잉 유동성을 조성하여 「디맨드·풀·인플레」를 일으킨 것이다. 초과수요 외에 「코스트·푸쉬」도 큰 작용을 했다. 60년대 초부터 노동 조직과 그 활동이 신장됨에 따라 임금 증가율이 빨라졌다. 임금 인상으로 인한 생산비의 증가가 물가 상승을 자극한 것이다.
「인플레」를 추진시켜 온 또 다른 요인으로는 다수의 대기업들이 관리 가격을 마음대로 조종해 온 사실을 들 수 있다.
대기업이 관리 가격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은 독과점 현상이 심화되어 관리 기업들이 시장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이후에 볼 수 있는 「인플레」의 새로운 요소는 수요 이전 「인플레」다. 고수요로 인하여 이윤이 높은 신산업이 대규모로 발전하면 그 산업에서 수요하는 원자재 및 노동 가격이 상승한다. 이러한 윈자재 및 노동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산업들도 할 수 없이 상승된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수요이전「인플레」다. 또 72∼74년 동안에 기업들이 가격상승을 기대하여 많은 재고품 투기를 한 것도 「인플레」를 가속시켰다.
「인플레」를 가속시킨 요인 중엔 국제적인 것도 있다. 우선 71, 73년 양차의 「달러」 평가절하는 「인플레」를 더욱 자극했다. 또 50년대 말부터 계속된 미 국제 수지의 적자 누적이 국제 유동성을 팽창시켜 세계적인 「인플레」를 만연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또 60년대의 세계적 경제 성장으로 인한 소득 증가와 이로 인한 소비재 수요 증가도 세계 「인플레」에 가세되었다.
이 세계적 「인플레」가 미국에 다시 수입되어 국제 「인플레」와 상승 작용을 했다.
72, 73년의 세계적 식량 흉작도 세계적 물가 상승에 가세되었다. 이렇게 「인플레」 요인들이 누적 된데다가 때마침 터진 73년 10월의 석유파동은 세계적 「인플레」를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석유 파동 후의 물가 상승은 경기 침체와 함께 온 것으로서 이른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다. 60년대까지 미국에선 「인플레」 수속을 위해 주로 긴축 금융 정책에만 의존해 왔지 계획적인 흑자재정이나 예산 균형 정책을 쓴 일이 없다. 사실 긴축 금융 정책만으로 충분히 「인플레」를 치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는 긴축 금융 정책만으론 한계에 부닥치게 되었다.
긴축 금융 정책은 초과수요로 인한 「인플레」를 억제하는 덴 효과가 있지만 「코스트·푸쉬」나 관리 가격 「인플레」 억제엔 아무런 쓸모가 없다.
현재의 여건으로는 초과 수요 억제를 충분히 달성할 만한 철저한 긴축 금융도 기대하기 어렵다. 재정 적자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74회계 년도엔 35억「달러」 75년엔 4백30억「달러」의 적자를 냈으며 76년엔 7백48억「달러」를 낼 전망이다. 또 경기 회복을 위한 정부 지출의 증가가 재정 적자 누적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재정 적자의 누적이 총수요를 자극할 뿐 아니라 국내 유동성을 크게 팽창시킬 것이니 현 미국의 「인플레」가 앞으로 2∼3년 안에 연율 3∼4%선으로 억제되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의회는 의회대로 정치적 동기 때문에 재정 지출을 더 늘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통화량을 반년 동안에 25%이상 감축시킬 수 있다면 「인플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긴축은 실업 증가 등의 부작용 때문에 실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득 정책이 「인플레」의 치료 책으로 등장할 수 있으나 현재의 「인플레」 추세를 수속할 수 있을 정도의 광범하고 강력한 소득 정책은 자본주의 경제 원칙에 배치된다. 또 「코스트·푸쉬」와 관리 가격 인상 조종이 미국 「인플레」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또 그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인플레」엔 속효약이 없는 형편이며 오랜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치료할 수밖에 달리 묘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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