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청춘을 낭비하게 하는 사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강일구

필자가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재수는 흔치 않았다. 힘든 고3 과정을 한 번 더 한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2012학년도 수능 응시자 중 서울 강남구 고교 졸업자는 76%가 재수를 선택했다.

왜 이리 재수를 선호하게 되는 것일까. 한국교육개발원은 재수생의 수능 성적이 국·영·수 영역에서 실제 0.75등급 올라 지원 가능한 대학이 달라지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재수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 버린 현재의 상황도 이해는 된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딱 1년 더 고생하면 그것으로 끝일까. 아니었다. 서울대 전체 학생의 34%, 연세대 학생의 20%가 자발적으로 졸업을 유예하고 10학기 이상 등록하고 있다. 영어점수·연수·인턴 등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밀리다 보면 사회에 진입하는 시기도 늦어져 심리적 독립의 기준인 결혼 연령도 계속 높아지게 마련이다. 남성의 평균 결혼(초혼 기준) 연령이 만 32세로 20년 전에 비해 약 5년이 늦어졌다.

재수, 딱 1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늦어지고 있다.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아니 그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어른의 시작을 뒤로 미루는 것이 일부 소수의 선택이 아닌 일반적인 패턴이 돼 버렸다. 1인분의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점점 늘어나고 그것들을 다 해야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청춘이 많다. 준비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갈수록 두려운 일이 된다. 모두가 이런 식이니 시간·노력·돈 등 다양한 투자를 통해 개인이 얻는 이득은 반비례해서 줄어든다. 그러니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건 아니다’ 싶지만 모두 다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기에 혼자만 소신껏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존재적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어서 몸을 틀 수도 없다.

마치 매미가 유충으로 땅속에서 최고 17년이나 지내다가 여름 한 철 한 달 남짓 나무에 매달려 울다가 알을 낳고 죽어버리는 것 같다. 지금 젊은이들은 일종의 ‘심리적 매미’다. 경쟁이 심해져 성인의 삶을 유예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1인분이 되는 데 필요로 하는 투자를 최소로 하고,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다. 완벽한 준비란 애초에 없다. 직접 부딪쳐 보면서 구르고 깨지고 실패를 해보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이를 위해선 실패를 용인하고 스펙보다 진짜 경험을 중시하는 사회 환경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의 불안을 줄여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매미같이 오랫동안 준비를 하며, 완벽을 기하기만 하다 제 풀에 지쳐버린 청춘의 낭비를 없앨 수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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