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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만나는 박 대통령, 과거사 대화는 안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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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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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테이블에 함께 앉는다. 24~25일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의 형식으로 만난다. 박 대통령이 협상테이블에서 아베 총리와 만나는 건 취임 후 처음이다. 정부는 21일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부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이 주최하는 한·미·일 3국 회담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3자회담 의제는 북핵과 핵 비확산 문제로 국한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는 이번 3자회담에선 논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보와 역사·영토 문제는 분리 대응하겠다는 ‘투 트랙 기조’를 명확히 했다.

 또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일본 정부와 국장급 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일본 쪽에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일본은 형식적 대답으로 일관해 왔지만 최근 들어 외무성이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밝혀 왔다고 한다. 한·일 외교 당국이 국장급 협의 채널을 가동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외교부 측은 설명했다. 일본의 태도 변화는 사이키 아키타카(齋木昭隆) 사무차관의 방한(13일), 아베 총리의 고노담화 계승 발언(14일) 등과도 시점이 맞물려 있다. 회담 성사를 위해 취한 일련의 ‘성의 표시’인 셈이다. 이는 정부가 미국과 일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 변화가 있다면 회담 성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그동안 정부는 일본에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해 왔다”며 “이런 대일외교 기조를 확고하게 유지한 결과 아베 총리의 입장 표명을 이끌어 냈고, 4월 중순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우리와 협의하겠다는 일본의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또 “일본의 어느 정도 자세 변화가 3자회담을 가능케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상회담 이후 일본의 태도다. 위안부 피해에 대해 정부는 ▶진정한 사과 ▶피해 배상 ▶가해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회담 후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다시 왜곡된 언행을 한다면 정부를 비판하는 국내 여론이 형성될 소지도 있다.

 그간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일정은 모두 청와대가 발표해 왔으나 이번 3자회담 발표는 외교부가 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실제 한·미·일 정상회담 소식은 외교부가 발표했지만 헤이그에서 열릴 한·중 정상회담 소식은 청와대가 전했다. 전날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 끝장토론회를 진행하느라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직접 기자실을 찾아 소식을 알렸다.

 ◆옛 동독 드레스덴공대에서 연설=박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 후인 26~28일 독일을 국빈 방문한다. 주 수석은 21일 “통일과 통합을 이뤄 낸 독일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공유해 우리의 통일에 대비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26일(이하 현지시간) 정상회담을 한다. 독일 통일의 주역을 직접 만나 한반도 통일에 관한 조언도 들을 예정이다. 옛 서독의 겐셔 전 외교장관, 쇼이블레 전 내무장관, 옛 동독의 데메지에르 전 총리, 에펠만 전 국방장관 등이 대상이다.

 28일엔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옛 동독을 방문한다. 박 대통령이 찾는 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5년 2월 연합군의 공습으로 25만 명이 사망하는 등 처참하게 파괴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후 재건 과정에 연합군으로 참전했던 미국·영국 등 서방세계가 참여하면서 화해를 상징하는 도시로 변했다. 박 대통령은 옛 동독의 대표적 종합대학이자 독일 5대 명문 공대로 꼽히는 드레스덴공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연설을 한다. 이 자리에서 ‘통일 대박’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독트린’이나 ‘선언’이라고 불릴 만한 파격적인 내용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유지혜·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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