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자회사 간부 사무실 뒤졌더니 1100만원 돈다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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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한전KDN 본사 16층. 업무로 한창 분주한 사무실에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일명 암행감찰반) 조사관 4명이 들이닥쳤다.

한전KDN은 1992년 한전이 100% 출자해 설립한 자회사다.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에너지 통합관리 솔루션 사업 등을 한다. 암행감찰반이 향한 곳은 이 회사 고위 간부인 A씨의 사무실이었다. 조사관들은 A씨 사무실에서 낡은 검은색 007가방을 찾아냈다. 가방에는 5만원권으로 현금 1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A씨는 “딸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을 모아놓은 개인 돈”이라며 “책상 옆에 두고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넣었다 뺐다 쓰는 용도이지 비리에 연루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암행감찰반은 이 돈을 압수해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 공직복무관리관실 관계자는 “개인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업체로부터) 대가성 정황이 있어 압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발견된 돈은 봉투 4개에 각각 200만원씩, 봉투 3개에는 100만원씩 들어있었다. 봉투는 경조사 때 쓰는 봉투가 아니었다는 것이 국무조정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공직복무관리관실은 A씨의 자녀 결혼식은 1년 전인 지난해 3월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받은 축의금을 사무실에 모아뒀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뭉칫돈과 관련, 공직복무관리관실은 한전 KDN과 평소 잦은 거래 관계에 있는 B업체 K 회장과의 유착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공직복무관리관실 고위 관계자는 “한전 KDN 측과 K 회장의 유착 관계를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며 “우리가 민간회사인 B업체나 K 회장을 조사할 권한이 없어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B업체는 2006년 설립돼 한전KDN에 통신 관련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한전KDN으로부터 수주받은 물량이 이 업체 매출(연 100억원 안팎)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B업체가 수주 과정에서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수주 물량을 계약하는 등 편의를 제공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B사 관계자는 “현재 K 회장이 해외 체류 중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K회장은 “문제가 된 A간부와는 경조사를 챙겨줄 정도로 아는 사이긴 하지만 돈을 준 적이 없고, 우리 업체가 특혜를 받은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앞서 지난달 2월 18일 공직복무관리관실은 서울 강남 룸살롱에서 한전 처장급(1급) 간부 4명이 인사청탁성 향응 접대를 받은 혐의를 포착하고 이들을 현장에서 적발했다. 당시 한 간부 주머니에선 현금 200만원이 나왔다. 이 간부는 한전 홍보용 기념품 구입 예산으로 2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해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성매매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관련 사실을 숨기기 위해 300여만원에 달하는 카드결제를 급히 취소하기도 했다. 한전 관계자는 “현장에서 현금이 나왔고 또 다른 부적절한 행태가 있어 일단 전원 보직해임한 상태”라며 “산자부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추가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직복무관리관실과 산자부는 또 다른 한전 간부들의 업체 유착 관계 등에 대해서도 첩보를 입수해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감사원·국무조정실 등은 올초부터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대상으로 비리 척결 차원에서 암행감찰을 진행 중이다.

채승기·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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