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에 선 한국의 유엔외교|유엔 정위 두 한국결의안 표결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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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괴는 73년 「업저버」자격을 얻은 지 3년만에 그들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했다. 중공의 「유엔」 가입이래 북괴가 「유엔」에 발을 붙인 것 자체가 한국의 외교적인 능력의 유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제3세계의 영향확대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었다. 공산측 결의안의 채택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공산측 결의안이 48대48 가부동수로 부결됐을 때 오늘의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다.
한국문제에 관한 공산측 결의안이 서방측 결의안과 함께 채택된 순간 한국이 「유엔」에서 지금까지 독점하고 있던 고지는 무너지고 남북한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
이런 사태 하나로도 한국의 「유엔」외교 뿐 아니라 전반적인 외교정책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은 것이다.
거기다가 공산결의안의 표결내용까지 들여다보노라면 여기에 한국의 대「유엔」외교에 대한 심각한 적신호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표결우선권·서방결의안·공산결의안에서 북괴가 얻은 표수는 각각 52·51·51표다.
그것은 북괴가 「유엔」무대에서 50을 약간 넘는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한국은 같은 세 가지의 표결에서 64·59·38표를 얻었다. 한국이 받고있는 지지는 그만큼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하다.
공산결의안 표결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50표를 넘는 기권이다. 「가봉」과 「리베리아」같은 서방결의안의 공동 제안국이 기권하고, 반대를 약속한 「터키」·호주·「필리핀」이 기권하고, 표결당시 한국의 특사가 방문하고 있던 「브라질」·「파나마」가 기권 또는 불참을 했다. 그밖에 한국이 기대를 걸고 있던 태국·「에과도르」·「말레이지아」·「레소토」 등이 기권했다.. 우방들간에서도 한국지지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요컨대 50개국 이상이 북괴 지지로 결속되고 40∼50개 국가가 북괴를 반대하는 진영에 가담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를 아주 비관적인 각도에서 본다면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서방결의안은 부결되고 공산결의안이 단독 통과된다는 역전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바로 여기에 「유엔」외교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하는 까닭이 있다. 그러나 그런 필요성을 인정하기는 쉬워도 구체적으로 방향을 잡기는 어렵다.
한국에 주어진 선택은 대강 두 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유엔」외교를 한층 강화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탈「유엔」이라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반되는 이 두 가지 방향 모두가 제나름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유엔」외교의 강자라고는 하지만 「유엔」외교라는 것이 진공상태에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유엔」외교는 결국 쌍무외교의 집적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유엔」외교라는 말을 남용하면서 「유엔」외교와 비「유엔」외교에 보이지 않는 새끼줄을 쳐놓고 있는 듯 한 인상을 주었다.
「유엔」외교와 비「유엔」외교의 분리로 쌍무외교에서 얻을 수 있는 국가이익이 「유엔」에서의 1표 때문에 희생되는 예는 적지 않다.
탈「유엔」의 경우는 정의부터가 문제다. 만약 그것이 한국의 「유엔」궤도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탈「유엔」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패배주의적인 현실도피라고 낙인 찍힐만하다. 그런 의미의 탈「유엔」이라면 그것을 누구보다도 북괴가 환영할 것이다.
이용희 교수가 내린 해석대로 탈「유엔」이 『「유엔」아니면 안 된다. 한국의 정통성은「유엔」에 있다』는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청산하는 것이면 그것은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에서 「유엔」의 『우상타파』일뿐이지 「유엔」 외교자체의 방향은 되지 않는다.
정치위의 대결을 앞두고 미국이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키신저」가 12개국에 친서를 보내어 한국지지와 북괴반대를 호소했지만 그다지 표 성과가 없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유엔」외교의 방향을 정하는데 교훈이 될만하다.
「싱가포르」대표 같은 사람은 한국 대표들에게 공산측 결의안에 반대를 하고싶어도 그렇게 하면 제3세계에 발붙일 수가 없어 고립된다고 실토했다. 공산측 결의안에 기권한 50개국의 대표가 그런 생각이다. 미국은 지금 제3세계가 파괴하려고 하는 「얄타」체제의 설계자다. 많은 「유엔」 회원국들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고있는 한국과 이해나 노선을 같이 하기를 꺼리고있다.
이런 현상은 중공과 소련의 적극적 지원을 받고도 「유엔」에서 한국과 대등한 위치에 으른 북괴의 입장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결론은 상식적인 것이다. 1년 혹은 2년은 수세에 몰리더라도 장기적 「유엔」외교의 방향을 설정하되 그것이 장기적인 대책이 되는 이상 국가이익을 우선시키는 이중적 외교에서 출발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과 극히 한정된 일부 주요국가들을 제외한 나라들과의 양자외교를 「유엔」외교에 종속시키는 지금까지의 한국외교정책을 거꾸로 뒤집는 역전현상을 의미한다.
「유엔」에서 당당히 한 표를 행사하고 있는 「상우토메프린시페」의 8만 주민이 같은 1표를 가진 인도의 1일 인구증가율과 같다고 말한 「뉴요크·타임스」지의 「설즈버그」한테서 한국은 이런 「코페르니쿠스」적 외교혁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만하다. 【유엔본부=김영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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