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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잡은 인천세관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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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인천항을 관할하는 인천본부세관의 지인에게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중국산 국화와 카네이션 수입과정에서 만연하던 탈세를 잡은 경험담이었다. 얘기는 재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세관에 한국절화협회 관계자들이 항의방문을 왔다. 절화는 가지째 자른 꽃으로 꽃꽂이, 화환 등에 사용한다. 협회 관계자들은 중국산 카네이션과 국화의 저가 덤핑공세 때문에 국내 화훼농가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소연했다. 재작년에만 국화는 4700만 송이, 카네이션은 1200만 송이가 중국에서 수입됐다.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수입업체들이 실제 가격보다 60~70%나 낮춰 수입신고를 해온 것이다. 구매가가 100원이라면 30~40원에 샀다고 신고한 거다. 목적은 관세포탈, 즉 탈세였다. 꽃은 관세율이 25%로 신고가를 낮추면 그만큼 세금이 줄어든다. 이렇게 들어온 중국산 꽃들은 국내산보다 싼 가격에 대량으로 유통됐다. 국내 3000여 화훼농가가 받은 타격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세관은 두 차례 조사를 벌여 탈세 업체들에 고액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양상은 엉뚱하게 전개됐다. 추징금을 안 내고 버티는가 하면 아예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는 업체들이 속출했다. 애썼지만 세금은 안 걷히고 단속 효과도 잠시뿐인 상황이 됐다. 낙담하던 차에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세관이 직접 중국 현지가격을 파악해 수입업체들에 수시로 공지하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세관이 이미 가격을 알고 있다면 업체들이 함부로 저가 신고를 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또 성실 신고를 거부하는 업체들만 조사하면 되니 단속 효율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해 4월 절화협회와 협력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효과는 대단했다. 수입 신고가격이 전년도에 비해 당장 100% 뛰었다. 관세만 8억원이 더 걷혔다. 덩달아 수입량도 줄었다. 연평균 100%씩 증가하던 카네이션 수입은 지난해엔 오히려 28% 감소했다. 국화 수입도 크게 주춤했다. 파급 효과도 컸다. 중국산 수입이 줄고 덤핑공세가 주춤하면서 국내산 국화와 카네이션 판매가 늘었다. 절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화훼농가의 매출 증가액만 134억원이나 됐다. 이번엔 산낙지로 대상을 넓혔다. 중국산 산낙지도 가격을 50% 정도 낮춰 신고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10월에 현지가격 조사결과를 공개하자마자 수입신고가격이 50% 넘게 올랐다. 관세가 16억원 늘었다. 관세청은 올해 이 같은 방식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모두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결과다. 세관이 여전히 단속만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관세는 제대로 걷지 못한 채 수입업체와 숨바꼭질만 계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라 운영도 마찬가지다. 매사 강경 대응만이 능사는 아니다. 너무 강하면 반발을 사고 부작용도 속출한다. 갈등과 마찰을 줄이면서도 효과는 높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