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지팡이」|「경찰의 날」 30돌에 살펴 본 「경찰관 24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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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찰관은 격무에 시달린다. 밤낮으로 밀어닥치는 과중한 업무량과 안녕 질서를 지켜야 하는 특수한 임무에 쫓겨 한숨 돌릴 여유마저 제대로 갖지 못한다. 기구가 개선되고 직제가 격상됐다지만 예산 및 인원의 충원이나 처우 개선은 여전히 거북이 걸음. 툭하면 「민중의 지팡이」라고 부르면서도 경찰관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국민의 이해는 나아진 것이 없다. 경찰의 날 30주년을 맞아 이들의 고된 하루를 살펴본다.
『쾅 쾅 쾅』 누군가 숨가쁘게 대문을 두드렸다. 상오 0시5분. 최만식 순경 (50·청량리 경찰서 홍릉 파출소)은 27년간의 순경 생활에서 얻은 습관으로 물먹은 솜처럼 퍼진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다.
『비상! 대왕 「코너」에 큰불이 났어!』 관내인 답십리 파출소 이 순경이 숨을 헐떡이며 외치는 귀에 익은 목소리.
『제기랄 또 비상이야.』 최 순경은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냉수 한 그릇으로 쏟아지는 잠을 쫓고 재빨리 옷을 갈아 입었다.
종종걸음으로 30분을 달려 청량리 역전 파출소에 도착하자마자 훨훨 타고 있는 대왕 「코너」 화재 현장의 경비 근무를 명령받았다.
불은 벌써 2층을 다 태우고 3층으로 번지면서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3층 오락장에서 남자 2명이 구명대를 늘어뜨리고 『살려 달라』고 외쳤다. 최 순경은 얼른 달려가 구명대를 받쳐들었다.

<1명이 주민 7천 맡는 곳도>
열기가 얼굴을 확확 낄듯하고 불꽃이 머리 위를 비처럼 쏟아졌다. 2명의 남자가 한꺼번에 구명대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최 순경은 물이 흥건한 땅바닥에 한바퀴 나동그라졌다.
『휴-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구나.』 최 순경은 온통 그을음과 진흙 투성이가 됐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상오 4시15분. 4시간에 걸친 진화 작업이 거의 끝나고 통금이 풀리자 상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실성한 상인들은 『아이구, 내 전 재산이 다 탄다』고 아우성치며 아직도 불꽃이 널름거리는 내부로 마구 뛰어들었다. 최 순경은 이번에는 상인들을 제지하느라고 진땀을 빼야했다. 50대의 최 순경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젊은이들과 4시간이나 실랑이를 벌이고 나니 온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상오 8시30분. 화재 현장 경비를 관할인 역전 파출소 동료들에게 인계하고 근무처인 홍릉파출소로 터벅터벅 걷는다. 철야 근무한 동료들과 교대를 해야하기 때문. 비록 화재 현장 비상 근무로 잠을 설쳤지만 순서에 따른 근무 교대는 피할 수 없는 것.
최 순경은 라면 한 그릇으로 아침밥을 때우고 정상 근무에 들어갔다.
11시50분. 폭행 신고를 받고 달려나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엉겨붙은 싸움꾼 2명을 연행했다. 싸움꾼은 파출소 기물을 마구 부수고 머리를 벽에 부딪쳐 피투성이가 된 채 최 순경의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최 순경이 멱살잡은 손을 떼밀 치자 싸움꾼은 『순경이 사람 잡는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 소동에 견장·계급장·단추 등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갈아 입은 제복이 3군데나 타졌다.
전국 2천4백20개 지·파출소에는 전체 경찰의 27·3%인 1만6천여명이 배치돼 1개 지·파출소에 평균 8명이 근무하고 있는 셈. 이 인원으로 갑·을부 2부제 교대 근무를 하고 있으나 요즘은 그나마 주민등록증 발급 요원으로 1명이 동사무소에 차출 당해 고작 3∼4명으로 격무를 치르고 있다.
서울 노량진 경찰서 봉천 파출소의 경우 직원 13명이 1명 당 평균 7천명의 주민을 맡고 있어 격일제 근무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 비번 일 때도 본서 지원 근무·비상 동원·요인 경호 경비 등으로 외근 경찰관이 제대로 집에서 쉴 수 있는 것은 5일에 하루 정도. 이래서 경찰관들은 아들·딸들에게 얼굴조차 익히게 할 수 없고 언제나 짜증스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때 「빽」 좋은 사람만 갈 수 있다고 부러움을 샀던 교통 경찰관은 요즘 「고통 경찰관」으로 불린다.
서울 서대문 경찰서 교통계 임영남 순경 (33)은 매일 상오 6시에 집을 나와 밤 11시30분까지 하루 17시간30분을 근무한다.
「러쉬·아워」의 교통 정리는 교통 경찰관에게 가장 큰 고역. 신문로 일대는 「오버패스」가 돼 전보다는 쉬워졌다고 하지만 독립문 쪽에서 밀어닥치는 차량과 인파는 여전히 붐빈다.

<9년 근무에 월급은 4만원>
66년10월 경찰 학교를 나와 서대문 「로터리」 근처에서만 31개월을 근무했다는 임 순경은 하루종일 선 채로 일하는게 고되기도 하지만 배기 「개스」에 병을 얻을까봐 더 걱정이라고 했다. 1주일에 한번씩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은 통금 2분전까지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카빈」을 맨 채 「바리케이트」앞에 선다.
다음날 상오 2시까지 근무. 교대를 하고 나면 통금이 풀릴 때까지 인근 파출소 의자에 걸터앉아 선잠을 잔다. 교통 순경들은 목욕비·장갑 값·식사 값 등 하루 1천5백여원이 필요하지만 전처럼 부수입을 잡을 수가 없다.
임 순경의 월급은 4만3천원 여기에 교통 수당이 7천∼8천원씩 붙는다. 서정 쇄신 전에는 관내 자가용들이 얼마씩 수시로 도움을 주었지만 요즘은 그나마 없어져 빠듯한 가계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 이제 겨울철이 닥치면 거리에서의 고통은 더해질 것. 임 순경은 벌써부터 몸이 움츠러든다고 했다.
범죄와 맞서는 수사 경찰관의 애로는 더욱 많다.
지난 10월×일 상오 5시. 서울 동부 경찰서 형사 당직실에서의 일.
『임마! 똑바로 불지 못해? 당장 잡아넣기 전에….』
밤새 충혈된 눈을 비비며 조서를 받던 이모형사 (35)가 겁에 질려 앞에 앉아 있는 좀도둑 한명에게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고 『철썩!』 따귀를 올려붙였다.
이 형사는 당직인 전날 아침부터 20시간이 되도록 눈 한번 감아보기는커녕 밥도 전날 하오 10시쯤 구내 식당에서 된장 찌개 한 그릇 시켜다 먹었을 뿐이다.
이 형사가 이날 맡은 형사 사건은 모두 6건. 이중에서도 하오 6시께 배당 받은 변사 사건 때문에 이 형사는 골탕을 먹었다.
현장을 둘러본 결과 타살 혐의는 없는 듯 했으나 변사 사건인 이상 검사의 지휘를 받아 시체 해부를 해보라는 주임의 지시였다.

<자기 돈 들여 수사비 치러>
이 형사는 장의 차를 불러 시체를 과학 수사 연구소까지 운구, 해부를 끝내고 다시 시립병원까지 옮기는데 2만5천원, 인부 수고비 4천원, 사진 값 1천5백원, 자신의 교통비 2천5백원 등 3만3천원을 썼다. 시체 처리비 1만원을 과장에게 받았지만 자신의 돈 2만3천원이 날아간 것.
일선 경찰에서 지급되는 형사 1인 당 수사 활동비는 하루 8백원. 지난해까지 1백90원씩 지급되던 것이 올해부터 6백10원이 더 올랐다. 76년에는 1천5백원으로 올릴 계획이라지만 현재로는 영업용 「택시」 12km 주행 요금 밖에 안 되는 수사비로 기동성을 가지고 전국을 누비는 범인을 쫓아야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과중한 업무 때문에 순직 또는 사망한 경찰관만도 지난 30년 동안 2만2천1백13명에 이르고 해마다 2천5백여명이 이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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