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를수록 좋은 고교 입시 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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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는 현재 서울 등 5대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는 고교 추첨 배정제의 개선 방안을 신중히 검토중이라고 한다.
현행의 고교 추첨 진학 제도가 안고 있는 모순이 심각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문교부의 이 같은 방침은 만각일 망정 매우 고무적인 전진이라 하겠다.
그 동안 현행 제도에 대한 의견은 여러 갈래로 엇갈려 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 제도를 실시한 이후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사학의 재정난 등이 심각한 문제로서 부각되면서 이의 개선은 이제 지체할 수 없는 과제로 대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본란이 여러 차례 지적했던 것처럼 추첨 배정 제도의 채용에 따라 입시의 과열 경쟁과 학교간의 우열 격차 등은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학습 지진아의 양산·평균 학력의 저하·모든 학교의 자율성 상실·사학의 운영난 등 폐단은 이 나라 교육계와 전도에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암영을 던져 왔었다.
고교생의 전국 평균 성적이 45·1점으로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든가 전국 사학 재단의 64%인 4백44개 법인이 법정 전 입금의 부담 능력마저 없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실명하는 단적인 예다.
또 최근 E여고에서 24명, J고교에서 15명의 학습 지진아를 무더기로 자퇴케 한 사실 등은 그 자체가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졌었다.
이렇게 현재화하는 고교 추첨 배정제의 부작용은 지난 2년간의 실험이 너무나 안이한 계획의 소산이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문교부가 지난 73년 말부터 이달 말까지를 목표로 해서 강력히 추진해 온 시설·학생·교원의 평준화 작업은 이제 도저히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설 면에서 기본 시설 확보율은 어느 정도 달성했으나 시청각 교재 확보율은 70%, 실험실습 시설은 훨씬 이에 못 미치는 선에서 학교마다 큰 격차를 보였다. 물론 교원의 평준화나 학생의 성적 평준화가 요원하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상 추첨 배정제의 전제 조건인 학교 평준화는 새 제도 실시 후 3년째가 되는 지금도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원래 불가능한 것이었음이 분명해진 이상 전제를 무시하고 제도 실시 자체에만 비중을 두었던 당국의 시책은 처음부터 무모한 것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한 나라의 기간이 되는 제반 제도는 충분한 연구와 대책 없이 성급하게 변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황차 「국가 백년의 대계」라고 하는 교육 제도가 그에 따라야 할 재정이나 확실한 준비 조처도 없이 조령 모개로 다루어질 수는 없다. 지난 근 30년간의 문교행정의 난맥은 바로 이점에서 많은 논란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만큼 문교부가 이제 뒤늦게나마 고교 추점 배정 진학 제도를 전국에 확대 적용하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다시 그 개선 방안을 모색하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알려진바 문교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①동일학군 안에서의 학교별 경쟁 입시제 ②연합 고사 합격자의 학교별 경쟁 입시제 ③사립 학교만의 학교별 입시제 ④현행 추첨 배정제의 연구 발전 ⑤학교별 경쟁 입시제 부활 등 몇가지 방안을 검토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들 몇개 시안을 놓고 내년 봄의 공청회를 거쳐 77학년도부터 새 방안에 따른 입시를 시행할 것이라고 전해진다.
여기 우리의 견해를 말한다면 우선 새 방안은 현재와 같은 추점 배정제 및 학교별 경쟁 입시제 병행 등 이원적인 제도로 인한 혼선만은 회피해야할 것이다.
요는 현행 제도의 돌이킬 수 없는 모순이 명백해진 지금 공부하겠다는 학생들로 하여금 경쟁적인 면학 분위기를 통해 각기 학력 향상을 도모할 수 있고 교육의 자주성을 살릴 수 있는 제도라면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으나 구태여 시간을 천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해방 후 20여 차례의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가 얻은 값비싼 교훈은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이란 결국 뛰어난 교사들과 뛰어난 소질을 가진 학생들의 공동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소신 있는 교육자에게 최대한의 자율을 허용하는 제도를 뿌리 박는데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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