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과 작업하니 화려? … "알고보면 3D 직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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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지선 JTBC `유자식상팔자` 조연출이 녹화 시작 후 카메라 10여 대가 보내오는 영상을 모니터하고 있다. 촬영 모습을 한눈에 파악하고,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진로 찾아가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직업 현장을 찾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지, 또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 어떤 길이 있는 지 등 구체적인 정보를 중고생 눈높이에 맞춰 알려드립니다. 4회는 PD입니다.

별그대(별에서 온 그대)·히든싱어·썰전…. 때로는 울리고 때로는 웃기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은 이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중심에는 방송 PD(Producer, Program Director)가 있다. 방송 PD(이하 PD)는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는 사람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비슷하다. 지휘자가 각각의 악기 연주자에게서 가장 좋은 소리를 뽑아내는 것처럼 PD는 출연자·방송작가·카메라감독 등을 통솔해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청소년 중에는 정확히 뭘 하는 지 모른 채 PD를 꿈꾸는 경우가 많다. 또 연예인을 가까이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막연히 선망하기도 한다. PD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이고, 되기 위해선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알아봤다.

지난 6일 오후 7시 JTBC 빌딩에 있는 호암아트홀에선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자식상팔자’ 녹화 준비가 한창이었다. 10여 대의 크고 작은 카메라가 둘러싼 세트로 출연자들이 속속 들어서자 공간이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서로 안부를 묻느라 소란스럽던 무대는 “녹화 시작합니다”라는 성치경 JTBC(유자식상팔자) PD 말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성 PD가 “하이~큐!”라고 사인을 보내자 카메라 10여 대에 동시에 불이 켜졌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건 카메라 앵글 안이 전부지만, 카메라 프레임 밖엔 웬만한 액션 드라마보다 더 치열한 방송 촬영 현장이 있다.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위해 4~5시간 촬영은 기본이다. 출연자는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얘기하려 경쟁하고, 카메라 감독은 보다 좋은 그림을 잡는 데 집중한다. 또 오디오 담당자는 수시로 음향을 체크하고, 작가는 대본대로 녹화가 잘 진행되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렇다면 PD는 뭘 할까. 제작진이 각자 맡은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총 지휘·감독한다. 김지선 유자식상팔자 조연출은 “실내 녹화보다 야외에서 촬영할 때 돌발상황이 더 많이 발생한다”며 “PD는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돌발 상황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극장’을 외주 제작하는 제3비전 김무정 PD는 “야외에서 촬영할 때는 갑자기 비가 내리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며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도 필요하지만 촬영 내내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 역시 그렇다. 드라마는 대본대로 촬영하지만 예능이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대본은 지침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지선 PD는 “유자식상팔자도 MC 외에 다른 출연자를 위한 구체적인 대본은 없다”며 “애들이 졸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선에서 무리 없이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모든 촬영 현장 지휘는 PD 업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촬영 전에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촬영 후에는 편집을 하는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다. 보통 기획 단계를 사전제작(Pre Production), 촬영 단계를 제작(Production), 편집 단계를 후반제작(Post Production)이라고 부른다.

 사실 모든 방송 프로그램은 ‘기획’에서 시작한다. 기획이란 프로그램 기본 뼈대를 만드는 거다. 기획안이 통과하면 본격적인 프로그램 구성을 준비한다. 함께 일할 작가나 조연출 등 제작진을 뽑아 팀을 꾸리고, 배우·MC·패널 등 출연자를 섭외하는 과정이다. 조승욱 JTBC(히든싱어) PD는 “‘히든싱어’도 가수와 모창 능력자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했다”며 “한 달 넘게 무대 구성과 프로그램 진행 방식 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의하면서 틀을 잡아 나갔다”고 말했다. 기획 단계는 프로그램 종류나 상황에 따라 길게는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김진만 MBC(곤충의 신비) PD는 "‘아마존의 눈물’을 제작할 때 조에족(브라질 북부에서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부족) 섭외에만 10개월 넘게 투자했다”며 “처음 기획대로 실행하기 어려울 때는 자신의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갈지, 차선책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촬영 후 이뤄지는 후반제작 단계는 쉽게 말하면 편집 과정이다. 필요한 장면을 잘라 붙이고, 자막을 삽입하고, 음향효과 등을 추가해 가공하는 단계다.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이건 편집해주세요” “이번에는 편집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는 건 이런 이유다. 4시간에 걸쳐 카메라 10대가 촬영하면 총 녹화분량은 40시간이다. 보통 조연출이 각각 나눠서 가편집을 하면 PD가 방송 분량에 맞춰 본편집을 한 뒤 종합편집팀에 넘긴다. 종합편집은 자막을 입히고, 컴퓨터 그래픽을 삽입하고, 음향효과를 넣는 과정이다. 그 후 PD와 작가 등이 방송을 먼저 보고 수정한 뒤 최종적으로 TV로 송출한다.

3D 업종이지만 희열 커

PD들은 “대표적인 3D(dirty·difficult·dangerous,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 직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촬영을 위해선 쓰레기장에라도 가야 하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촬영을 강행해야 한다. 김진만 PD는 “함께 작업한 PD가 아마존에서 흡혈모기에 물려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며 “위험한 걸 알지만 프로그램 질을 높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어려운 점은 또 있다. 개인 시간을 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다. 촬영 스케줄에 따라 주말은 물론 공휴일도 반납할 때가 많다. 김지선 PD는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올해 공휴일 많다고 호들갑 떠는데 난 아무 감흥이 없다”며 “방송사 입사 초반에는 두세달 동안 일주일에 서너번은 아예 집에 못 들어갔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회사에서 밤을 샌다. 편집실에는 아예 기다란 의자가 있어 2~3시간 쪽잠을 청할 수 있다. 조승욱 PD도 “히든싱어 시즌 1을 진행하는 4개월 여 동안 하루도 못 쉬었다”며 “자신의 생활이 중요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이 직업을 선택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부담도 크다. 연예인 등 출연자 섭외나 장소 섭외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승욱 PD는 “히든싱어는 매회 새로운 연예인을 섭외해야 해서 더 어려웠다”며 “연예인 섭외가 잘 안 돼 모든 걸 포기하고 특별방송을 준비하다가 극적으로 섭외가 이뤄져 방송이 나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 날짜는 다가오는데, 섭외가 안 되면 피가 마르고 심장이 타 들어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청률 경쟁은 PD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일 중 하나다. 김진만 PD는 “중·고등학교 때 성적표 받을 때만큼 매 순간 긴장된다”며 “시청률이 높은 게 반드시 좋은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을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뭘까. 바로 ‘희열’이다. 내가 만든 방송 프로그램이 다른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들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이 든다는 거다. 조승욱 PD는 “밤을 새워 편집한 후 터덜터덜 집에 돌아갈 때 친구 아들이 보낸 ‘방송 너무 재미있었다’는 문자 한 통에 또 힘이 난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을 지휘하는 EBS 채라다 PD 모습. [사진 EBS]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

 방송 프로그램은 혼자 만들 수 없다. PD가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혼자 촬영하고 대본 쓰고 컴퓨터 그래픽을 삽입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작가, 조연출, 카메라 감독 등 적어도 5명 이상과 함께 작업한다. PD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소통하는 능력인 이유다. 김진만 PD는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모든 상황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밀고 나가는 근성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포용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와 다른 사람이 의견이 다를 때는 상대방을 이해시켜야 한다”며 “자기 주변 사람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4800만명 국민이 공감하는 프로그램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소통만큼 중요한 게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거다. 김무정 PD는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며 “반려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면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균형 잡힌 시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무정 PD는 “평소 책을 읽거나 TV를 볼 때 끊임없이 질문하는 습관을 통해 비판하는 능력을 키우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조승욱 PD는 “글을 잘 쓰는 방법이 다독·다작·다상량이듯 좋은 PD가 되는 방법도 TV 많이 보고, 영상 많이 만들고,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진로 전문가가 본 이 직업
다양한 경험 통해 리더십 키워야

최근 새 방송 프로그램을 홍보할 때 PD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PD의 연출력이 시청자 관심을 끌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증거다. 스타 PD로 불리며 연예인만큼 인기높은 PD가 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성있는 연출로 시청자 마음을 사로잡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PD의 다음 작품에 관심을 기울인다. 과거엔 방송사 간판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이젠 이처럼 PD가 중요해지고 있다.

 PD는 방송 현장의 리더다. 제작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함께 일하는 팀원을 이끄는 역할이다.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 작가·조연출(AD)·카메라맨·기술감독·조명감독·음향감독 등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 PD에게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다. 꼭 팀원을 휘어잡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스태프가 각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팀 사기를 키울 수 있는 ‘따뜻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사회적 책임감도 필요하다. TV만 켜면 예능·드라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남녀노소 누구나 텔레비전에 노출된다.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미칠 영향력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는 말이다.

 PD는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시청률이나 방송 마감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 생활의 여유를 갖기는 어렵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과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만큼 평소 여행이나 독서·전시관람 등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이는 지망생에게도 해당한다.

이랑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전임연구원

Q&A
PD 되려면 신방과 필수? 무슨 전공이든 상관없어요

Q.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PD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A. 있습니다. JTBC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해야 하지만 공중파 3사는 신입사원 채용시 학력 제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뽑히는 사람은 대부분 4년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2010~2012년 9월 지상파3사에 채용된 인원 616명 중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은 3명에 불과합니다.

Q. 신문방송 관련 학과에 진학하는 게 유리할까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방송사 채용시 학과 제한이 없고, 신문방송학과 졸업자에게 가산점을 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현직 PD 중에는 공대부터 음대까지 전공이 다양합니다. 신문방송이나 언론홍보영상을 전공하면 미디어 산업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전공을 선택해 자신만의 강점을 만드는 것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Q. 대학 진학 후 어떤 활동이 도움이 될까요.

A. 어떤 경험이든 다양하게 쌓는 게 좋습니다. 방송이나 영상 관련 동아리 활동도 도움이 됩니다. 영상 제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얻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 영상 공모전에 도전하거나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보다 중요한 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겁니다. 최근 PD가 되고 싶다는 학생을 보면 판에 박힌 듯 비슷한 경험을 하더군요. 다른 사람과 차별화할 수 있는 나만의 특별한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Q. 지상파와 케이블, 그리고 독립 프로덕션의 근무 환경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A. 근무환경만 비교하면 지상파, 케이블, 독립 프로덕션 순입니다.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사는 PD가 되면 자신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해 제작하는 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독립 프로덕션은 PD가 되도 방송사 프로그램을 외주 제작해야 합니다. 코너 하나 정도는 기획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 자체를 기획하는 건 훨씬 더 어렵습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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