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단기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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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출부진과 경기침체가 심화되었던 지난 상반기 중에도 총체적인 자금 수급량은 오히려 더 크게 늘어났다 한다. 한은이 발표한 상반기 자금순환 분석에 의하면 이 기간 중 총 자금수급 규모는 1조5천억원으로 전년동기에 비해 무려 68%, 74년 하반기에 비해서도 56%이상 늘어난 것이다.
불황과 수출의 현저한 침체로 인해 실물 면의 성장이 크게 부진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자금 수급량의 이 같은 이례적인 팽창은 분명히 경제의 부문간 조화를 깨뜨릴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12·7조치와 함께 표방되었던 총수요억제정책은 적어도 통화 측면에서의 물가·국제수지 압력을 배제하려는 것이 기본 목적이었다.
그래서 금융부문에서의 강력한 긴축정책이 계속되었고, 금융부문의 자금잉여폭도 전례 없이 줄어드는 결과를 빚었다. 주요 잉여부문인 개인부문도 자금잉여 폭이 전년동기의 절반이하 수준으로 격감하고 있다.
이처럼 양대자금 원천의 잉여 폭이 크게 줄어들었는데도 수요측면에서는 오히려 전년동기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그 동안의 수요관리정책에 허점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허점의 한 부분은 재정지출의 지나친 확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자금순환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74년 하반기부터 정부부문의 자금부족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이른바 경기 대책비와 관련한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금공급부문의 경색과 함께 나타난 정부자금수요증대는 여타부문의 압박은 물론 자금순환의 전체적인 균형조차 교란하게 마련이다.
더 큰 자금부족은 법인기업부문에서 나타나고있다.
불황의 심화와 함께 74년 하반기에는 자금부족이 감소했던 이 부문에서 어떻게 올해 상반기 중 급작스럽게 2배 가까운 자금부족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이 기간 중 국내법인기업은 수출부진과 불황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를 계속 늘려왔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늘어난 자금수요가운데는 「인플레」에 따른 명목수요의 증가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차입에 의한 자금조달의 창구를 대폭적으로 개방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제수지상의 애로 때문에 해외 단기차입을 무한정 허용한 결과가 곧 이 표에 나타난바와 같은 기형적인 자금수급을 초래했다하겠다.
이에 따라 자금수요의 해외 의존도는 비할 수 없이 높아졌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해외차입의 개방이 불급한 자금수요를 유발함으로써 시설과잉이나 자원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해외여건의 악화로 국내 경기회복의 전망이 매우 어두운 현실을 고려한다면 해외신용도입에 의한 무한정한 시설확장은 철저히 규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명실상부한 총수요 억제가 이루어지려면 수요관리의 양대 허점인 정부부문과 해외부문에서의 동시적인 긴축이 필요 불가결한 요소다.
이는 곧 정부의 자금수요를 크게 줄이고 해외단기차입을 억제하는 길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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