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인구의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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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주로 시원한 가을이니 책을 읽기가 쉽다는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상 무더운 여름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몸에 흐르는 지경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기는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 그야말로 독서삼매의 경지에 이르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24일부터 시작되는 제21회 독서주간도 역시 그런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겠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을 맞아 국민들의 독서습관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매년 가을이면 독서주간을 맞아 도서관을 무료로 개방하고, 도서전시회를 갖는 등 갖가지 행사로 책읽기 운동을 벌여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독서인구는 별달리 확대되지 않은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무릇 모든 행사가 그렇듯이 독서주간행사도 그것이 연례행사에 그치는 한에 있어서는 영속적이며 범국민적인 호응을 얻기는 어려운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작년에 서울과 부산 두 도시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민 1인의 연간 독서 량은 5∼10권, 1일 독서시간은 1, 2시간 정도였다.
또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연간독서 량은 40∼60「페이지」로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서관협회가 73년 4월에 조사·집계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국민 1인당 보유 책 수는 0·2권, 연간 1인당 도서구입 비는 1백원으로, 다른 선진국 도서구입 비·보유 책 수의 1∼2%에 불과하다. 미국은 1인당 20권에 4천3백원, 영국은 6권에 2천원, 일본은 4권에 1천7백20원이다.
이 같은 현실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 독서상황의 낙후성을 짐작할 만 하다.「독서인구확대」라는 구호가 실효를 거두는 단계는 아직도 요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서인구 확대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구호만의 독서운동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먼저 출판업·서적상의 보호·육성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집필자·저자의 우대가 정책면에서 마련돼야겠다.
그뿐 아니라 공공·학교 도서관을 통틀어 전국에 걸쳐 3천3백 개소에 불과한 도서관시설은 이제 대폭적인 확충이 있어야겠다.
그밖에도 외국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도서관 자체가 능동적인 독서권장「프로그램」을 마련, 책읽기운동을 지역사회단위로 확대하고 학생은 물론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든 채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어 가는 풍토를 이룩하기 위한 정책적인 배려가 없이는 독서인구의 확대나 독서의 생활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서에 관한 기본자료마저 확보하지 못하는 오늘의 출판관계자의 무력도 문제가 크다. 최근에「독서여론조사」라고 해서 흔히 단편적이고 불충분한 조사결과가 가끔 발표되고 있으나 국가적인 기관들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조사·분석을 한 예는 듣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71년 국립중앙도서관이 전국적인 독서조사를 실시한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독서의 질」은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나마「베스트셀러」로서 독서경향의 주류를 형성하는 책들이 거의 얄팍한 피부감각 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정신문화의 깊이를 더하기보다는 생활의 당면한 변의 화와 오락 화 현상을 대변하는 이런 독서경향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깊이 있는 책을, 생각해야 하는 책을 찾기보다는 쉽게 읽고 즐기기 위한 책에 빠지거나 책을 멀리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독서주간」을 맞으면서 계절에 상관없이 독서의 질을 높이는 노력도 아울러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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