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고수에게 묻는다] 주식시장에서 짐 싸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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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20면

지난 설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따뜻한 곳으로 갔다면 빼놓지 말아야 할 즐길거리는 역시 쨍쨍한 햇볕 아래에서 즐기는 수영이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호텔 수영장으로 나온 투숙객들 역시 같은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웬걸, 불운하게도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하늘이 흐리고 비가 오는 일이 반복되는 게 아닌가. 비가 쏟아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짐을 챙겨 방으로 얼른 들어갔는데 우리 가족의 대처는 달랐다. 그냥 수영장에 계속 머물렀다. 어차피 물속에 있는데 비가 오면 어떠하며 젖어봐야 수영복 아니냐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괌은 열대 기후이니 비 맞으며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곧 날씨도 갤 터였다.

이러한 선택을 한 덕에 우리 가족은 가장 좋은 위치의 파라솔을 잡고 시간 허비 없이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철수하면 더 좋은 파라솔로 옮기는 일을 반복한 결과였다. 반대로 수영장과 호텔방을 왔다 갔다 한 사람들은 이리저리 짐을 옮기느라 힘만 빼고 파라솔 위치는 더 나빠졌으며 수영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마켓 타이밍은 왜 실패하는가
대부분의 주식투자자들 역시 비를 맞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떻게든 하락장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시도하는 것이 바로 마켓 타이밍(주식시장이 상승할 것인지 하락할 것인지를 예상하고 투자하는 행위)이다. 예컨대 투자한 종목에 악재가 발생하면 팔았다가 악재가 소멸되면 다시 사려고 하며, 신중하게 골라 펀드에 가입하고서도 하락장이 예상되면 얼른 펀드를 환매해버린다. 하지만 이들은 비가 올 때마다 호텔 방을 들락거렸던 사람들처럼 역선택의 입장에 놓인다. 그 공통된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일러스트 강일구

첫째,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언제 날이 갤지 모르는 것처럼 주식시장의 단기적인 움직임도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유한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비가 오는 걸 보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거나 주식시장이 하락하는 걸 확인하고 주식을 파는 것처럼 사후적인 행동일 수밖에 없다. 좀 전에 했었어야 하는 일을 지금 하는 투자자에게 주식시장은 저점 매도, 고점 매수(Sell low Buy high)라는 최악의 징벌을 내린다.

둘째, 호텔에선 수영장에서 짐을 챙겨 방으로 들어갈 때 따로 돈을 내지 않지만 주식시장은 잦은 이동에 대해 비용을 청구한다. 주식을 거래할 땐 매매수수료를, 펀드를 해지할 땐 환매수수료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하락 위험을 피해 손실을 줄이는 일인데 수수료가 무슨 대수냐고? 저성장으로 인해 두 자리 숫자 수익률을 올리기 어려운 시대에 매매수수료 떼고 거래수수료 내고 나면 그로 인한 수익률 저하 폭은 생각보다 크다.

셋째, 주식시장을 떠나 있으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무엇이 좋은 주식인지 감이 떨어진다. 호텔 방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면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잘 알 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수영장에 남아 있어야 비가 거세어지는지 약화되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수영장을 맴돌다 보면 쨍 하고 해가 떴을 때 어디가 명당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이 해 질 무렵쯤 되었을 때 가장 좋은 파라솔에 짐을 둘 수 있었던 이유는 명당을 마음속으로 찜해 놓고 점유자가 비 온다고 자리를 뜨는 순간 잽싸게 그 파라솔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우직하게 남아야 큰 기회 잡아
비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가치투자자들은 평소 사고 싶은 종목을 사전에 정해놓은 후 하락장이 온다며 겁을 먹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냅다 던지는 주식을 싸게 쟁여 뒀다가 다시 상승장이 왔을 때 인내와 용기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워런 버핏, 피터 린치, 존 템플턴 등 가치투자의 대가들을 보라. 그들은 시장을 빈번하게 들락날락거리지 않는다. 대신 시장에 우직하게 남아 기회를 엿보다 큰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잡아내 수익으로 연결한다.

실제 운용을 해보면 하락장을 거치면서 포트폴리오가 점점 견고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장이 빠질 때 더 높은 품질의 주식을 살 수 있거나 싼 주식을 팔고 더 싼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공부를 열심히 해둬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시장에 끈덕지게 남아 거기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과거 투자자 입장에서 마켓 타이밍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코스피 지수가 300에서 2000을 오갈 정도로 한국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심했던 탓이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선 지금 최근 3년간 코스피 지수의 변동폭은 1800~2100이었다. 바닥과 천장의 차이가 16%에 불과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선 마켓 타이밍을 하는 것보다는 시장에 남아 종목 선택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낫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전략을 바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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