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 비동맹회의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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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리마=김영희 특파원】남북한의 비동맹회의가입이 토의되던 25일 밤부터 26일 새벽까지 1시간20분 동안 「크리욘·호텔」의 한국대표단 지휘본부는 계속 일희와 일비가 교차했다. 야간회의로 하오9시에 열린 비공개 전체외상회의는 하오11시45분부터 남북한가입문제를 토의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김동조 장관은 『이제 포문은 열렸다』고 연발하면서 각국대표들을 접촉하는 한국대표들의 보고를 기다렸다.
「사우디아라비아」「가봉」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 한국지지발언을 한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이런 형태로 회의는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한국은 가급적 많은 나라들이 장시간 발언을 하면 그것이 효과적인「필리버스터」가 돼서 남북한의 가입문제는 내년의 「스리랑카」회의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뒤 알려진 사실이지만 회의는 한국문제토의 벽두에 「페루」외상이 사무국직원을 시켜 북괴의 가입신청은 조정위가 만장일치로 권고했다고 보고하게 하자 북괴를 지지하는 나라들은 박수로 그 말을 받아 그것을 북괴가입승인으로 해석했다. 한국가입신청은 조정위에 의해 권고된 바 없기 때문에 박수를 받지 않았다.
사실은 이것으로 북괴의 가입승인, 한국의 가입부결은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지지를 약속한 많은 대표들이 그 같은 보고와 박수의 의미를 몰랐거나 알고도 북괴지지 국들의 치밀한 음모를 저지할 수 없음을 알고 반대를 위한 발언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선창으로 「잠비아」 「시에라리온」 「가봉」및 「오만」대표가 그런 식의 결정에 항의하는 발언을 차례로 했다. 북괴가입이 기정 사실화 된 후 16개국의 대표가 도합 32번의 발언을 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고 더구나 「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와 인도 같은 영향력 있는 나라들의 호응이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한국대표들은 자정 무렵부터 회의장 입구에서 서성거리면서 장시간의 회의에 지쳐 나오는 대표들을 붙들고 회의 진행상황을 물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 대표들은 자기 입으로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는지 내막을 이야기 않고 『피곤하니 놓아달라』면서 총총히 사라졌다.
북괴대표 권민준도 회의진행이 궁금했던지 「호텔」 「로비」에서 두 「블록」떨어진 회의장 입구까지 오갔다. 도중 한국기자들을 만나면 『어떻게 되어 가는 거요』라고 묻기도.
그러나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김동조 장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이윽고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어째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대표들이 지지 발언을 하지 않는 가고 그 지역 담당대표들을 닥달하면서 애를 태웠다.
회의 결과를 안 것은 26일 새벽 1시15분. 김창열 「가봉」주재대사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표한테서 들은 부결소식을 김 장관에게 보고하자 비로소 알게된 것.
그로부터 10분 뒤 회의는 끝났다.
「크리욘·호텔」입구에서 권민준은 북괴를 지지한 대표들에게서 축하의 악수와 포옹을 받기에 바쁘고, 한국대표들은 결론이 있을 수 없는 간단한 사후대책회의를 열고 김 장관이『심히 유감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나중 밝혀진 일이지만 한국을 지지하는 일부 대표들이 계속 북괴단독가입승인에 반대하는 발언으로 지연전술을 쓰자 공산월남외상 「빈」여인이 한국을 가입시키겠다면 퇴장하겠다고 위협하는 전술로 나와 북괴지지 국들의 요란한 갈채를 받았다.
「데·라·플로레」「페루」외상은 새벽1시25분 드디어 북괴가입승인·한국가입부결을 기정사실로 하고 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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